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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소설부터 창작 장편까지... 홍난파는 인기작가였다'[오색인문학]

■학교서 배우지 않은 문학이야기

-홍난파 번역 ‘청춘의 사랑’ (1923)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

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첫번역

빅토르 위고·에밀 졸라 작품까지 선봬

창작 단편 '사랑하는…'에 장편도 출간

음악가 길 걸으며 종합예술가 꿈 접어

1917년의 홍난파




1919년 도쿄, 현해탄을 건너온 스물한 살 청년의 하숙방. 엊그제 동포 유학생 수백 명이 모여 제국의 심장부에 2·8독립선언서를 꽂았다. 머잖아 식민지 방방곡곡으로 만세 함성이 번질 참이었다. 새로운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잡지가 청년의 가녀린 손끝에서 살짝 떨리는가 싶었다. ‘삼광’ 창간호. 문학과 음악, 미술을 아우르는 최초의 예술 동인지가 탄생한 순간이다. 조선에 새로운 빛이 퍼져 가고 조선인이 예술에 눈뜨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터다.

1919년 발간된 삼광 창간호


바그너로 창간호 표지를 장식했다. 첫머리는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글로 열었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친구들을 끌어들여 빚어낸 값진 열매였다. 음악학교 출신의 청년은 도례미(導禮美), 도레미생(生), ㄷㄹㅁ, 솔파생, 홍영후, ㅎㅇㅎ, YH생, 난파, 난파생 등등 갖가지 필명을 동원해서 음악 평론과 번역을 도맡다시피 했다. 훗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요 미끈한 연미복이 잘 어울리는 지휘자로 세상에 떨친 이름은 홍난파.

홍난파는 ‘삼광’ 창간호를 무대로 시와 소설을 쓰고 수필과 평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홍난파의 진정한 데뷔작은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번역한 장편소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왜 하필 도스토옙스키란 말인가.

도스토옙스키(1872)


숱한 문학청년이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에 열광하고 체호프와 고리키에 갈채를 보내는 시대였다. 뜻밖에 아무도 도스토옙스키를 돌아보지 않았다. 홍난파는 식민지 시기를 통틀어 도스토옙스키에 도전한 최초이자 유일한 번역가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식민지 시기에 한국어로 번역된 최초이자 유일한 도스토옙스키 작품이다. 오늘날 대표작으로 꼽히는 ‘죄와 벌’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번역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가 홍난파가 남긴 문학적 기념비가 아닐 수 없다.

홍난파에게 도스토옙스키는 빛나는 예술이었을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조금 묘한 작품이다. 제목과 달리 무려 55통의 연애편지만 왔다 갔다 하는 유별난 이야기다. 그것도 가난하고 소심한 중년의 말단 서기와 병약한 이웃집 고아 아가씨 사이에서. 남자 쪽은 설레는 감정을 숨겨 가며 길게 공들인 편지를 자주 전한다. 여자 쪽의 답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짧고 드문드문 돌아온다. 한쪽에서는 섬세한 연애편지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범범한 일상의 소식이다. 얼마나 애틋한 노릇인가.



청춘의 사랑(1923)


홍난파는 처음에 ‘사랑하는 벗에게’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원제에 가깝게 ‘빈인(貧人)’으로 바꾸었다. 드디어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낙찰된 제목은 좀 생뚱맞게 ‘청춘의 사랑’이다. 청춘이라니 가당찮은 말이다. 두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은 극심한 빈궁도 사라졌다. 풀빛 하트 안에서 잘생긴 청년이 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표지 어디에도 밑바닥 사랑의 아픔은 배어나지 않는다. 홍난파의 ‘청춘의 사랑’은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을 탁월하게 번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연애소설이었다.

‘청춘의 사랑’이 출간된 바로 그해, 홍난파의 단편소설집 ‘향일초’도 세상에 같이 나왔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 ‘사랑하는 벗에게’라는 창작소설이 실렸다. 청년 음악가와 미모의 미술학도 사이에서 오가는 17통의 연애편지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를 흉내 낸 것이 분명하거니와 최초의 순수 서간체소설이자 예술가소설이 바로 홍난파의 ‘사랑하는 벗에게’다.

그러고 보면 홍난파가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뜻인가. 맞다. 홍난파는 ‘향일초’ 말고도 이미 2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바 있는 인기 작가다. 출간 예정이거나 유고로만 남아 있는 원고도 더 있다. 촉망받는 음악가의 치기 어린 곁눈질이요 한때의 방황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를 시작으로 홍난파는 투르게네프,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스마일스를 번역했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엔키에비치, 세기말 작가 뮈세, 자연주의 극작가 주더만의 대표작을 선보였다. 홍난파가 손댄 것은 한결같이 최초이거나 유일한 한국어 번역으로 기록된다. 게다가 1919년부터 단 5년 반 만에 내놓은 성과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안석영이 1931년 그린 홍난파 캐리커처


3·1운동 전야의 도쿄 하숙방에 틀어박혀 도스토옙스키를 번역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초상이야말로 최초의 세계문학 번역가가 탄생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화려한 각광을 받으며 콘서트홀로 돌아온 홍난파는 문학 대신 음악에 일생을 걸기로 작정했고 어김없이 성공했다. 우리는 선구적인 음악가를 얻었지만 그 대신 홍난파가 종합 예술가로 성장하는 대하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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