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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체 담보로 잡힌 권진규 작품을 유족에게 돌려주라"

조각가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소장처 법정다툼

유족 "미술관 건립조건으로 일괄 양도"

소송 도중에 작품들 담보로 대출사실 알아

법원 "유족에게 작품 돌려주라" 판결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32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20세기 한국 조각계를 대표하는 작가 권진규(1922~1973)는 살아서도 서러웠고 죽어서도 고단했다. 유족이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작품들을 양도했으나 걸림돌을 만나 소장가가 미술관 건립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 바람에 700여 점의 작품 또한 수년 째 제대로 전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 초 이들 미술품을 담보로 소장처에서 거액을 대출받는 바람에 작품들은 전시장이 아닌 대부업체 수장고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권진규의 유작을 둘러싼 법정 싸움에서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권진규의 여동생이자 유족 대표인 권경숙 씨 등의 권진규기념사업회가 작품 소장자인 ㈜대일광업을 상대로 지난해 2월 ‘미술품 인도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권진규기념사업회는 25일 “춘천지방법원 제7 민사부가 지난 19일 ‘미술품 인도 청구의 소’에 대해 피고 대일광업 주식회사는 원고들로부터 양도 대금을 지급 받음과 동시에 원고들에게 해당 권진규 작품들을 인도하라는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유족은 2015년에 대일광업과 ‘권진규미술관 설립 합의서’를 체결하고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700여점 작품을 시세보다 훨씬 낮은 40억 원에 일괄 양도했다. 처음에는 춘천시 동면 월곡리 소재 대일광업의 달아실미술관 2층에 권진규미술관이 마련돼 작품을 전시했다. 대일광업의 김 모 대표는 소문난 미술품 컬렉터이며 로봇장난감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점차 기존 미술관 공간이 축소되고, 별도 미술관 건립이 지지부진하면서 유족과 소장가 사이의 잡음이 급기야 소송으로 이어졌다.



생전에 조각가 권진규가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모습. /사진제공=내셔널트러스트


심각한 문제는 작품이 대부업체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대일광업이 관계사인 대일생활건강으로 2018년 6월에 작품 소유권을 이전했고, 대일생활건강이 지난해 1월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의 자회사인 ㈜케이론대부에 권진규 작품들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다는 사실이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는 원금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작품 매각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700여 작품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서 전시되기를 바란 작가와 유족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국내외 미술품 경매회사들이 작품을 담보로 한 대부업을 겸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급전이 필요할 경우 당장 현금화가 어려운 작품을 담보로 맡겨 돈을 빌리는 방식인데, 이율이 높은 편이고 상환을 못할 경우 작품이 경매에 오르게 된다. 법률사무소 리버티의 이지은 대표변호사는 “옥션이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분리했다 해도 거래가격에 대한 담보가치 평가를 모회사인 옥션이 하는 것이라면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다”면서 “대부업법 준수 여부 등에 대한 관리감독 사각지대인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작품을 점유하고 있는 케이론대부와 모회사 케이옥션 측에 정중히 부탁드린다”면서 “지난 1년 여 동안 이 사건의 권진규 작품들을 온전하게 잘 보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1심 판결이 확정되는 대로 귀사와 긴밀히 협력해 작품을 순조롭게 환수해 올 것을 희망한다. 해당 작품들이 조속히 유족에게 돌아가 우리 사회의 소중한 공공자산으로 후대에 길이 보존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후의를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유족들은 작품들을 돌려받기 위해 집을 파는 등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작품 소유권을 가진 대일광업과 대일생활건강은 춘천시에 접촉해 지역문화 자산으로서 권진규미술관 설립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여인 흉상 ‘지원의 얼굴’ 등으로 유명한 권진규는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일본에서 인정받고 활약하다 귀국해 국내에서도 왕성하게 일했으나 1973년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같은 쪽지에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고 적었지만 생전에 “작품들이 다 내 자식”이라 자주 말했고, 여동생이 유지를 지키고자 미술관 건립의지가 있는 독지가를 찾아 나섰다. 지난 2004년 하이트에 작품들을 양도했으나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의 경영난 때문에 미술관 건립이 어려워져 2010년에 작품을 돌려받았다. 이후 미술애호가이자 권진규의 춘천고 후배인 대일광업의 김 모 대표가 권진규미술관 건립 의지를 밝혀 작품 소유권이 옮겨가 지금에 이르렀다. 권진규가 사용하던 동선동 집과 아틀리에는 지난 2006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 기증돼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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