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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전라도 우대에서 北차출까지 간 공공의대 '시나리오'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北 재난시 남한 의사 급파' 與 법안 논란 확산

이인영 "기본적으로 가능", 신현영 "수정할 수도"

의사들, "아무것도 결정 안됐다" 복지부 안 믿어

정세균 "업무개시 명령 안 한다 약속한 적 없다"

코로나 속 출신지·이념·계층 따라 또 나라 절단

文 "빨리 업무 복귀" vs 전공의 "졸속 정책 철회"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으로 의사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북한에 재난이 발생하면 ‘남한’의 의료인을 긴급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의료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굳이 전남·전북 지역 공공의대 신설 정책을 앞당겨 강행하는 것 자체를 2022년 대선을 앞둔 정부의 ‘표밭 관리’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시·도지사 학생 추천, 시민단체 추천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이번엔 해당 정책에 특정 계층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별칭까지 달았다. 여기에 의사를 공공재처럼 표현한 여당 발의 법안과 북한 급파 법안이 더해지면서 공공의대를 둘러싼 당정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의료계의 인식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물론 “정부안 자체가 지역 의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는 의사들의 주장과 달리 “돈도 많이 버는 의사들이 국민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다”는 여론도 정부 핵심 지지층을 중심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만만찮게 형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조건이 더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의사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장을 날렸고, 젊은 전공의들은 “진료현장에 복귀하고 싶으니 의료계와 상의 없이 추진된 정책을 철회해 달라”고 재차 호소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남북의료교류법’ 9조. /자료제공=국회의안정보시스템


‘北 재난 시 남한 의사 급파’ 법안 논란 확산

지난달 말, 의료인들은 7월2일 신현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 보건의료의 교류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안(남북의료교류법)’을 뒤늦게 확인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북한에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남한’은 의료장비는 물론 의료인력도 북한에 긴급 지원할 수 있다. 해당 법안 9조 1항은 ‘정부는 남한 또는 북한에 보건의료 분야 지원이 필요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남한과 북한의 공동 대응 및 보건의료인력·의료장비·의약품 등의 긴급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2항은 ‘북한에 재난이 발생할 경우 재난 구조·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지원 또는 지도·감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북한 재난 상황에 의사 등 각종 의료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법이다.

이 법안은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재난기본법)’과 맞물려 논란을 증폭시켰다. 황 의원이 발의한 법안 34조 1항은 재난 관리 책임기관이 비축·관리해야 하는 장비·물자·시설에 ‘인력’도 포함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의사들 “공공의대 게이트” vs 복지부 “아무것도 결정 안돼”

이에 상당수 의사들은 “공무원이 아닌 의료인을 공공재나 강제징용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공공의대 설립부터 모든 과정이 결국 북한 지원을 위한 것이었느냐”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공공의대 신설안이 선거를 의식한 전남·전북 지역 및 시민단체 우대 정책으로 소문이 나더니 이제는 북한까지 엮인 일련의 시나리오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공공의대는 하나의 거대한 게이트”라는 얘기까지 심심찮게 돌았다. 가뜩이나 전북 남원시가 지난 5월 이미 공공의대 설립 준비를 위해 전체부지 면적의 44%인 2만8,944㎡에 대한 토지 보상을 완료한 사실과 전남 등 각 지자체에서 ‘공공의대 유치 확정’ 현수막을 이미 걸어놓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정부가 정책 방향을 이미 확정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터였다.

보건복지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지나친 억측은 ‘가짜뉴스’라는 입장을 줄곧 내비쳤다. 하지만 복지부의 주장을 믿는 의사들은 극소수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쥔 기득권의 밥그릇 지키기’를 모든 논점의 시작이자 끝으로 이해하지만, 의사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불공정’ ‘불통’ ‘정책의 정치적 악용’을 더 중요한 명분과 가치로 앞세우고 있다. 정부는 현 공공의대 설립안으로 열악한 지방 의료 현실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지역 의료 현장에서 이에 동의하는 현직 의사는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호남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이인영 “기본적으로 北파견 가능”... 신현영 “수정·삭제할 수도”

이런 상황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신현영 의원 법안을 두고 “기본적으로 보건의료협력 연장선에 있다면 가능하다”고 밝혀 정부·여당에 힘을 실었다. 그는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법안에 동의하느냐”는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의 지적에 “강제적 방식의 보건의료협력이 가능한 것인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보건의료협력 차원의 연장선에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그간 있었던 보건의료분야의 협력, 이 연장선에서 구체적으로 상호 간에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며 “강제 징발, 징집 이런 수준에서의 행위로까지 가능한 것인지는 확인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신 의원은 지난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부분은 실제 북한 의료인과 교류협력을 원하는 의료인을 상호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목적이었다”며 “하지만 ‘강제성’을 가지고 ‘의료인력 파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면 당연히 수정 또는 삭제 가능성이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해명했다. 또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하여 의료인들이 우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정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아닌 ‘남한’으로 표현한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남북한 용어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수정 가능함을 덧붙여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8월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단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전공의에 업무개시 명령 안 한다 약속한 적 없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했다”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측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며 의료계와 다시 한 번 각을 세웠다.



31일 국무총리실은 입장문을 통해 “23일 대한전공의협의회 집행부와 총리와의 간담회 당시 총리실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한 바 없다”며 “간담회에서는 합의문 외에는 어떠한 약속이나 이면 합의도 없었음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지난달 23일 오후 8시30분부터 11시까지 면담한 뒤 ‘정부는 대한전공의협의회를 포함한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엄중한 코로나19 시국을 고려하여 전공의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진료에 적극 참여한다’는 합의문을 공개한 바 있다.

정 총리의 입장문은 같은 날 “23일 간담회 당시 총리실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젊은 의사들에 대해 무작위적인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했다”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측 주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대전협은 이날 “(정부가) 27일에는 다시 의료계의 의견을 듣겠다며 고발을 유보하더니 바로 다음날인 28일 돌연 태도를 바꿔 10명을 형사고발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당시 수도권 전공의와 전임의, 281명에 대해 내렸던 업무개시명령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전공의들의 주장을 반박한 직후인 31일 오후 6시30분 의료계 원로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다만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어차피 타협하지도 않을 것이면서 정치적으로 보여주기 식 면담만 이어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달 19일 긴급 간담회를 갖는 박능후(왼쪽)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서울경제DB


자칭 ‘합리적 시민’, 타칭 ‘맹목적 진영논리’에 또 나라 두 동강

공공의대 논란은 코로나19 확산 속 의사 파업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와 연계되며 또 다른 진영 다툼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지자체와 의료인들은 차치하더라도 상당수 유명인, 네티즌, 심지어 언론인들조차 본인이나 부모 출신지·이념·계층·세대에 연동돼 한쪽에 편향된 논리만 쏟아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공의대 문제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또는 미래통합당에 대한 찬반처럼 맹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이든, 차후든 의료 정책과 파업은 환자들 생명이 달린 문제인 만큼 갈등의 강도도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사 총파업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적절한 결정’이라는 답변은 전체 응답자의 51%, ‘의료계와 충분한 대화 없이 나온 일방적 결정’이라는 응답은 42%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공공의대와 직접 연관을 갖는 광주·전라 지역의 정부 지지 응답(67.9%)이 유독 높았음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나머지 국민들은 비교적 찬반 의견이 팽팽했던 셈이다.

같은 달 23일 코리아리서치,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합동으로 발표한 조사에서도 “의사 수를 늘리고 지방에 근무할 의사 및 필수 의료 분야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응답이 50%, “지방에 일하는 의사들과 필수 의료 분야에 일하는 의사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어야 한다”는 응답은 44%를 기록해 오차 범위 안에서 충돌했다.

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접견실 앞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실태 파악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 70여 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했다. /대구=연합뉴스


文 “어떤 조건 필요한지 이해 안돼” 비판에 전공의 “탄압 말라”

갈등이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문 대통령은 3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의료계를 향해 “의사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는 데 그 이상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문 대통령은 “엄중한 국면에 의료계가 집단적인 진료 거부를 중단하지 않아 대단히 유감”이라며 “지금처럼 국민에게 의사가 필요한 때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코로나가 위중한 상황에서 의료 공백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러 차례 양보안을 제시했고 합의가 이뤄져 해결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며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후 정부가 약속한 협의체와 국회가 제안한 국회 내의 협의기구 등을 통해 모두가 공감대를 표명한 의료 서비스의 지역 불균형 해소와 필수 의료 강화, 공공의료 확충뿐 아니라 의료계가 제기하는 문제들까지 의료계와 함께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법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지도 않다”며 “하루속히 업무에 복귀해 환자들을 돌보고 국민의 불안을 종식시키는 의료계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대전협 측은 이에 대해 “원점에서 재논의해달라, 졸속 의료정책 추진이 재발하지 않게끔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을 멈춰달라”는 호소문을 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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