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극장에 들어서기 전 선택해야 한다. 장애인 특수학교와 한방병원, 둘 중 어느 쪽을 동네에 유치하고 싶은지. 선택에 따라 앉을 자리가 나뉘고 이렇게 결정된 자리에서 관객은 상대편에 앉은 사람과는 다른 장면을 보게 된다. 같은 공간이지만 서 있는 위치, 바라보는 것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이 특별한 경험은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바라볼지에 달렸다고.
사회적 이슈를 심도 있게 전달해 온 극단 ‘신세계’가 관객을 주민토론회 참석자로 초대한다. 오는 18일 동양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생활풍경’은 지난 2017년 논란이 된 서울의 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에 관한 주민토론회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해당 지역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장애인 학부모들이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한 일화로 알려진 사건이다. 공연을 지휘하는 김수정 연출은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뉴스를 접했을 때의 충격이 무대화의 계기였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어쩌다 무릎 꿇는 지경까지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꽤 오랜 기간 조사를 했어요. 들여다볼수록 장애인 학교든 한방 병원이든 그 기저에는 저마다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깔렸더군요. 뉴스처럼 잘잘못을 나누는, 단순한 님비 현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어요.” 우리네 삶이 축소된 한 지역구의 이야기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다루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찬반 논란이 팽팽했던 실화이기에 무대에 올리기까지 더욱 신중해야 했다. 자문 전문 변호사의 조언을 구해가며 밑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김 연출은 물론 극단 단원들도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마주하곤 했다. 김 연출은 “단원들과 각 주체의 입장을 이야기하는데, 우리 스스로 장애인을 보호·배려 같은 프레임에 가두고 있음을 느꼈다”며 “동등한 입장에 선 당사자로서가 아니라 (그들을 약자로 보는) 도덕적인 키워드로 차별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프레임으로부터 좀 편해진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게 공연의 또 다른 목표이기도 하다.
관객이 자기 의견에 따라 앉는 자리를 달리하는 설정은 실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연출은 “이 사건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혐오와 차별은 결국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며 “알면 알수록 이분법이 아닌 다분법적인 이 사건을 관객도 경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좌석 구분은 동시에 ‘중립’이라는 표현으로 포장된 다수의 무관심이 결국엔 차별과 혐오의 씨앗이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관객들은 비록 자리는 선택했을지라도 ‘남의 동네에서 벌어졌던 남의 일을 소재로 한 연극’이라는 마음일 수 있다. 생활풍경은 이런 관객들에게 줌인·줌아웃의 역할을 자처한다. 김 연출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중립의 입장이 될 것”이라며 “잘 모르는 것은 괜찮지만, 애써 모른 척하면서 도덕적 가치로 정당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관객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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