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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원에 사서 7억원 판 겸재 그림이 '이집'서 나왔다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 미술품수장가 김용원 회고록

단원 김홍도 희귀작, 천경자 대표작 뒤에 그가 있었다

겸재 정선 ‘노송영지도’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1975년 무렵의 일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지나다 우연히 한양화랑에 들렀다. 알고 지내던 화랑 사장이 그림 한 점을 펼쳐 보였다. “화면 가득 휘굽은 몇 백 년 나이를 먹었음 직한 노송 아래 담홍빛 버섯 모양의 영지가 그려있는 그림”은 압도적이었다. ‘을해추일(乙亥秋日) 겸재팔십세작(謙齋八十歲作)’이라 적힌, 겸재 정선이 80세 노년기에 그린 ‘노송영지도’는 세로 147㎝에 달하는 보기 드문 대작이었다. 그 때 돈으로 400만 원이면 상당한 액수지만 아깝지 않았다. 귀히 여겨 극진히 모시던 그림이었으나 사업 자금이 쪼들리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아 2001년 4월 서울옥션 경매에 작품을 내놓게 됐다. 이목이 쏠렸다. 제작 연도가 명확히 적힌 겸재 작품이 많지 않은데다, 말년 대작으로 작품성이 높았으니 호암미술관·간송미술관·고려대박물관 소장품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경합이 붙었다. 예상가를 뛰어넘어 7억원에 팔렸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동양제철화학 창업자인 이회림 OCI명예회장이 구입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은 2005년 6월 인천시에 송암미술관을 지어 주면서 이 ‘노송영지도’를 포함한 8,000점을 함께 기증했다.

단원 김홍도 ‘주상관매도’


#역시나 1975년 즈음,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의 작은 화랑을 찾아갔다. 민주화 운동으로 언론사를 떠나게 됐다는 기자 부부가 새로 차렸다는 곳이었는데, 안주인이 시멘트 푸대같은 누런 종이에 말린 그림 하나를 풀어놓았다.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마음에는 들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라 했다. 동산방화랑에 표구를 맡겼고, 말쑥하게 살아난 그림을 두고 박주환 동산방 대표가 “사람 따라 그림이 간다”며 감탄했다. 20여 년 후인 1995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특별전’을 통해 처음 공개된 ‘주상관매도’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면 ‘주상관매도’를 고르고싶다”고 했던 명품이며, 삼성그룹이 2010년도 캘린더로 특별제작한 ‘단원 김홍도’ 달력에 수록된 작품이다.

반세기 이상 미술품을 수집해 온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이들 그림이 모두 한 집에서 나왔다. 검여 유희강의 현판글씨에서 이름을 딴 종로구 평창동의 ‘운심석면(雲心石面)’. 집 주인은 신문사 기자 시절이던 1966년부터 월급을 쪼개고 모아 그림을 사기 시작해 우리 근현대미술사의 산증인이 된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다. 그가 당호를 풀어 쓴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그림 수집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신문사에 입사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그가 아내 손을 잡고 중·고교 은사였던 박상옥 화백의 개인전을 찾아가 구입한 ‘안개꽃’이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인사동에서 처음 산 서양화는 최영림 화백의 ‘장가가는 날’이었다. 그림 사고파는 일에는 신뢰와 안목이 중요하다. 지금은 문 닫은 명동화랑은 일찍이 추상미술을 선보였는데, 저자는 이곳 김문호 사장과 돈독했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작품 ‘손’을 본 후 마음에 두고 있었더니 김 사장이 구해줬다. 나중에 조각가의 여동생으로부터 그 ‘손’을 작가의 미망인이 간절히 갖고 싶어 하니 일본에서 브론즈로 떠서 나누어 가질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들었다. 선뜻 테라코타를 일본에 보냈고, 미망인은 자신의 청동 ‘손’을 제작하면서 저자에게도 한 점 선물했다.

권진규 ‘손’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의 뒤에도 저자가 있었다. 천경자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었고 새로 구입한 올컬러 옵셋 윤전기를 활용하고 싶었던 저자는 천 화백에게 글과 그림을 신문에 연재하자고 제안했다. 4개월의 여행을 20회로 연재한 후 화가는 현대화랑에서 전시도 열었다. 해외여행의 이국적 풍광을 자신만의 독특한 정취와 화법으로 풀어낸 천경자 특유의 ‘풍물화’가 꽃을 피웠다. 이를 응축한 100호 크기의 대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국전(國展)에도 출품됐다. 국전에서 이 작품을 본 저자는 “이 그림만은 아프리카 기행을 기획한 내가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꽤 오래 걸어뒀던 그림은 현재 서울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박수근 목판의 원판을 5점이나 구입했지만 나중에 세워진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고 정규의 ‘오두막’, 구본웅의 ‘한강’ 등 미술관도 가지지 못한 희귀작들을 일찍이 알아보고 소장했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현재는 서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근현대미술의 큰 줄기에 개인의 경험을 촘촘히 녹여내 기술한 특별한 미술사로서의 의미가 크다. 이응노 화백의 초창기 ‘대나무’부터 전성기 ‘군상’과 작고 두 달 전에 받아온 돌에 그린 군상까지 그가 품은 작품들은 작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닌다. 동양화의 저평가를 안타까워하는가 하면 여성미술가, 지역작가 등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서술하는 재미가 탁월하다. 저자는 제주에 갈 때마다 변시지 화백을, 윤이상음악제 때 내려간 통영에서는 전혁림 화백을 찾아뵙곤 했다. 대우그룹에 근무하면서 하남공단에 공장을 조성하던 시절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직접 경험한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 기반 한 민중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공감가는 작품, 역량있는 작가들을 한두점 모은 것이 임옥상,오윤,신학철,홍순모,강요배,민정기 등 오늘날 민중미술의 거두들이다.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에 ‘금강산’ 걸렸던 것으로도 이목을 끈 민정기 화백의 100호 크기 인왕산도 그가 소장하고 있다.



컬렉션을 시작하는 태도에 관해 저자는 “화랑에 가서 단 한 점이라도 돈을 내 사보라고 권하고 싶다”면서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 한 점이라도 사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고 했다. 부러워 할만한 소장품들도 처음에는 월급 쪼개서, 작은 것부터 시작됐고 안목과 취향이 분명해진 후 선택과 집중으로 이어졌다. 간송 전형필의 사례처럼 예술가와 평론가 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하고, 수장하는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책은 가나문화재단이 ‘문화동네 숨은 고수들’이라는 주제로 기획해 출간한 세 번째 책이다. 지난 2014년에 고미술상인 우당 홍기대의 ‘조선백자와 80년’, 2016년에 표구장 이효우의 ‘풀 바르며 산 세월’이 출간됐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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