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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73년 골란고원 전차전

군수·의료시스템이 승패 갈라

대전차호 부근에서 피격된 시리아군 T-62 전차들. 이스라엘은 지휘관의 자율적인 판단, 효과적인 군수지원, 응급 후송 시스템으로 승리를 거뒀다.




1973년 10월 6일 오후 2시, 골란 고원. 이스라엘 경계병들이 다급한 보고를 올렸다. ‘시리아군이 포대 위장막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3분 뒤 이스라엘군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졌다.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순간이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예상했으면서도 이집트와 시리아의 주도면밀한 선제공격에 놀랐다. 이집트는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도하작전’(존 린 일리노이대 교수 ’베틀 전쟁의 문화사‘)을 펼치며 순식간에 수에즈 운하를 넘어 시나이 일대를 휩쓸었다. 시리아는 골란고원의 일부 방어선을 뚫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스라엘은 시리아군 방어에 우선순위를 뒀다. 골란고원을 점령당하면 대도시가 많은 북부지역 전체를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절대 열세. 2개 여단 대 5개 사단, 병력수 5만 대 6,000명, 야포 600문 대 60문으로 승산이 없었다. 전차도 1,200대를 투입한 시리아에 170대로 맞섰다. 제공권도 여느 때와 달리 시리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 동원병력이 충원되기 전에 골란고원을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쏟아부었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라는 골란고원 전차전에서 이스라엘은 예상을 뒤엎고 완승을 거뒀다. 지휘관 90%가 전사하며 전선을 지켰던 이스라엘은 동원부대가 본격 투입되면서 오히려 시리아 영내 깊숙이 진격,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을 이끌었다. 이스라엘의 승리 요인은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 일선 군수지원 및 응급 후송 시스템. 이스라엘은 반파된 탱크를 회수해 현장에서 수리 후 즉각 재투입한 반면 시리아는 조금만 손상을 입어도 버렸다.



특히 의무 후송장갑차를 운용해 부상자를 치료해 바로 현장에 올려보냈다. 피격된 전차와 다친 승무원이 되돌아와 싸우는 군대와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으면 전투력을 완전 상실하는 군대의 차이는 결국 승부를 갈랐다. 둘째는 유연성 있는 전장 운용. 시리아군은 집중사격에 노출돼도 교리에 따른 대형을 용감하게 유지한 반면 이스라엘은 개별 지휘관 판단에 따라 전진과 후퇴, 은폐, 회피 기동을 구사해 불리한 전투환경을 극복해냈다.

오늘날 골란고원의 일부엔 스키장까지 건설돼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시리아가 영토를 회복하기란 당분간 어려워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영원히 지켜낼 수 있을까. 대포와 전차가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골란고원에서 우리의 모습도 본다. 한국군의 군기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선택도 그렇다. 병력 감축에 직면한 군은 군수와 병참부터 줄이고 있다.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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