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14년 차 김태훈(35)은 “네가 잘 쳐야 투어가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평균 310야드 가까운 시원한 장타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미남형 얼굴과 183㎝의 훤칠한 키까지 갖춰 국내 남자투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김태훈이 2018년 8월에 멈춰있던 우승 시계를 다시 돌렸다. 11일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GC 코리아(파72)에서 끝난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김태훈은 4라운드 합계 6언더파 282타로 우승했다. 2년여의 우승 가뭄을 최대 상금(15억원) 대회에서 씻은 것이다. 통산 2승 뒤 3승까지 2년9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던 김태훈은 3승 뒤 4승까지의 시간을 2년2개월로 단축했다. 지난해 6월 태어난 첫 아이에게 선물하는 첫 트로피이기도 하다.
우승상금 3억원을 거머쥔 김태훈은 상금랭킹 7위에서 단숨에 1위(약 4억6,600만원)로 올라섰다. 데뷔 첫 상금왕 등극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시즌 종료까지 2개 대회만 남긴 시점에 대상(MVP) 포인트도 2위로 점프해 2관왕 가능성도 크다. 포인트 1위 김한별이 미국 대회 출전 일정 때문에 국내 1개 대회를 걸러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스케이트·아이스하키·역도를 한 덕분인지 골프 입문 때부터 거리가 남달랐던 김태훈은 그러나 늘 정확도가 문제였다. 겨울훈련 동안 거리를 조금 양보하는 대신 정확도 높이기에 몰두한 효과는 가장 중요한 순간 나타났다. 4타 차 선두로 출발한 이날 김태훈은 78.5%(11/14)의 높은 페어웨이 안착률을 자랑한 끝에 버디 3개와 보기 4개의 1오버파로 선방했다. 우승상금 외에 제네시스 GV80 차량과 내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출전권까지 얻었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PGA 투어 더 CJ컵 출전권은 남은 시즌 대상 목표를 위해 사양했다.
첫 버디 이후 보기만 4개를 범해 경기 중반 이재경에게 1타 차까지 쫓긴 김태훈은 13번홀(파3) 티샷을 핀 60㎝에 붙여 위기를 넘겼다. 2타 차를 유지한 16번홀(파4)에서는 295야드 드라이버 샷을 페어웨이 한가운데 보낸 뒤 두 번째 샷에서 실수가 나왔지만 2m 남짓한 결정적인 파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김태훈은 드라이버를 고집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클럽을 들어 안전하게 파를 지켰다. 웬만하면 덤벼들던 공격적인 스타일을 내려놓고 유연하게 돌아가는 새로운 스타일로 일군 의미 있는 우승이다. 김태훈은 “16번홀 파 세이브가 결정적이었다. 굉장히 어려운 경사였는데 운 좋게 들어갔다”며 “대상 수상은 매년 목표였다. 올해는 욕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시즌 첫 승을 노렸던 2년차 이재경은 4언더파 2위로 마쳐 올 시즌 세 번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48세 양용은은 1오버파 공동 9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이날로 더 CJ컵에 출전할 KPGA 투어 대표 명단도 확정됐다. KPGA 선수권 우승자 김성현이 일찌감치 한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대상 포인트 상위 선수인 김한별·이재경·이태희·함정우가 합류했다. 이들은 오는 15일 대회 1라운드에 나선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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