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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아침에]‘10월은 잔인한 달’ 안 되려면

임석훈 논설위원

경제강국 한국 노벨 과학상 못받는건

단기 성과·효율에 집착하는 풍토와

원천기술보다 응용분야 치중한 때문

끈기있게 연구자 자율성 보장해줘야





올해 노벨상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4일 일본 NHK 방송이 눈길을 끄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노벨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노벨상 수상자들에게서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물리학·화학·생리의학상 등 과학 분야만 해도 24명의 수상자를 낸 노벨상 강국에서 왜 이런 걱정이 나왔을까. 이유는 일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 수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부과학상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당 일본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2008년 131명에서 2017년 119명으로 줄었다. 기사는 이 자료를 근거로 미국·독일과 함께 한국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일본 박사학위 취득자가 증가 경향인 한국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제로(0)’인 우리 입장에서는 부자의 엄살,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2016년 펴낸 ‘김상욱의 과학공부’에서 “10월은 한국 과학자들에게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올해도 잔인한 10월이었다. ‘노벨상 족집게’로 불리는 글로벌 학술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 단장을 화학상 ‘유력 후보’에 올려 기대감을 높였지만 불발됐다.

왜 한국 과학자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느냐는 자탄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벨상이 무슨 대수냐며 너무 호들갑 떤다고 한다. 노벨상 선정 과정에 일부 편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노벨상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노벨 과학상은 여전히 한 국가의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이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노벨 과학상에 가까이 가기 위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민간·학계(民官學) 모두 알고 있다. 기초과학 육성을 최우선 국책과제 중 하나로 삼고 일관성 있게 투자하는 등 장기적 지원책을 펴는 것이다. 연구자의 자율성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과학을 정보기술(IT)과 많이 비교하고는 한다. ‘IT는 영화, 과학은 연극’이라는 표현도 있다. IT는 화려하고 빛의 속도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만큼 IT 분야에는 짧은 기간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기업이 많다. 반면 과학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연구해야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한다. 한국연구재단 정책혁신팀이 지난달 21일 펴낸 ‘노벨 과학상의 핵심연구와 수상연령’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성과를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37.7세에 핵심 연구를 시작해 55.3세에 완성하고 69.1세에 수상자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은 실패도 흔하고 혼자보다는 함께해야 한다. 특히 근래 들어 노벨 과학상은 한사람보다 공동수상자가 많다. 협업·공동연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흐름인 것이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환경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연구 환경은 이와 거리가 있다. 효율과 성과 위주의 풍토가 여전하다. 이는 단기간 내에 좋은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원천기술로 연결되지 않은 채 응용기술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몇 해 전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응용 분야에 치중됐던 점을 꼽았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올해 1월 신년간담회서 “노벨상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며 기초연구를 마음껏 하다 보면 노벨상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이걸 해라’는 식으로 주도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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