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서둘러달라고 촉구하면서 여야 갈등 역시 정점으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이미 네 차례나 공수처 출범을 강조해온 만큼 여당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선출 보이콧에 공수처법 개정안 심사라는 압박 카드로 공수처 출범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날 야당이 주장하는 라임·옵티머스 사건 특별검사제 도입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데 이어 민주당 지도부가 거부 의사를 재차 밝히면서 ‘제2의 패스트트랙 정국’이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28일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개혁이란 국민의 여망이 담긴 공수처의 출범 지연을 이제 끝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요청한 공수처 설립은 현 정부 들어 예산안 시정연설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한 단골 소재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도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검찰 내부의 비리에 대해 지난날처럼 검찰이 스스로 엄정한 문책을 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지난 2018년 시정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은 공수처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했고 취임 첫해인 2017년 시정연설에서는 “(공수처)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통령인 저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 출범을 거듭 강조하면서 민주당은 공수처의 연내 출범을 목표로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법적 절차대로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 돌입하되 야당 추천위원들의 거듭된 비토권 행사로 출범이 어려울 경우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할 예정이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와 별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심사를 진행해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상대로 공수처장 임명 완료 및 활동 개시 시한(11월)을 못 박는 작업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힘이 추천위에서 ‘비토권’을 행사해 절차를 지연시킬 경우 이를 돌파하기 위해 수단으로 공수처법 개정안 단독 처리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방송에서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지 않고 방해하면 민주당은 (후속법안을) 준비해놓았다가 바로 법 개정에 돌입할 것”이라며 “합리적이고 자격이 되는 분이 추천됐는데도 만약에 도돌이표를(거부권 행사를) 세 번까지 한다면 법적·제도적 치유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여당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공수처장 추천위 구성에 협조한 만큼 야당이 요구해온 특검 도입을 수용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의결정족수가 ‘7명 중 6명’으로 규정된 현행법에 따라 야당 측 위원 2명이 갖고 있는 ‘비토권’을 민주당과의 특검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며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를 방문한 문 대통령과의 사전 간담회에 불참하며 특검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특검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문 대통령과의 사전 간담에 응하지 않았다”고 공지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현행 공수처법이 위헌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향후 법사위에서 ‘독소조항’ 제거를 명분으로 법 개정 역공세도 함께 펼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야당의 특검 요청에 대응하지 않고 여당 지도부마저 특검 수용 거부 의사를 재차 밝히면서 여야의 갈등 역시 정점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라고 국민들 눈에 보인다면 특검 주장이 생명력을 가지겠지만 지금 나타나는 상황과 내용을 보면 금융사기사건에 불과하다”며 “특검 사안이 아니라 생명력을 갖기 힘들다”고 평가절하했다.
국민의힘은 특검 요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장외투쟁’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장외 카드’까지 꺼내든다면 여야가 극단적으로 충돌한 지난해 11월의 패스트트랙 정국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진용·윤홍우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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