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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 전설' 피에르 카르댕 잠들다

60년간 자기 이름 딴 브랜드 유지

백화점에 기성복 선뵌 첫 디자이너

90세에도 작품 발표회 열고 활동

2011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가운데)이 관객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EPA연합뉴스




60년 넘게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유지해 온 프랑스 패션계의 전설 피에르 카르댕이 별세했다. 향년 98세.

29일(현지 시간) AFP통신은 유족의 발표를 인용해 피에르 카르댕이 파리 서부 뇌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예술 아카데미도 트위터를 통해 그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192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카르댕은 2세 때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다. 14세에 처음으로 재단을 배웠고, 23세에 파리로 이주해 패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46년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에게 고용돼 책임 재단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1950년에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한 카르댕은 비닐과 금속섬유 등 혁신적인 재료를 활용하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기성복 라인을 출시해 자신의 컬렉션을 백화점에 선보인 최초의 프랑스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나는 대량생산을 매우 믿는다”며 1962년 파리의 유명 백화점 프랭탕에서 기성복 판매를 시작한 그의 행보는 개인 맞춤형 패션이 유행했던 당시 패션계에서 혹독한 비난을 받고 파리의상조합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훗날 카르댕은 당시를 회상하며 “오늘날 내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기성복 덕분”이라며 “살롱을 떠나 대중적인 거리로 나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1979년에는 서구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중국 베이징에서 패션쇼를 열어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카르댕은 2012년 7월 90세의 나이에 작품 발표회를 여는 등 노년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 컴백 작품 발표회에서 “나는 아직 내일을 위한 가솔린(에너지)을 갖고 있다”면서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어렸고 현재는 가장 나이가 많다. 나는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며 열정을 드러낸 바 있다.

로이터통신은 카르댕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현대적 디자인으로 기존의 패션 스타일을 뒤집어놓은 인물이라고 평했으며,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75년가량 대중을 위해 활동해온 디자이너였다고 전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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