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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국악과 기술의 조화

임재원 국립국악원장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얼굴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체온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열화상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이다. 잠시 후 다소 차분한 음성이 모니터 너머로 울린다. ‘정상입니다.’ 얼굴만 내비치면 몇 초 내에 정상 여부를 분별하는 그야말로 명쾌한 판결자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을 마주하는 것은 국립국악원 공연에도 흔한 일이 됐다. 국악 공연의 무대배경이 되던 병풍은 종종 영상으로 대체되고 스테레오 음향은 13.1채널의 입체음향으로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극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실시간 참여가 가능한 온라인 생중계 공연을 진행하는가 하면 스스로 이동하는 무대와 음악 신호에 맞춰 연출되는 조명, 그리고 홀로그램과 함께하는 공연까지 펼치는 상황이니 가끔은 무대 위가 극장인지, 방송국인지, 첨단 장비의 시연회장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이 매력적인 기술들은 고유한 가치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역으로 본질이 도구를 위한 가치의 활용으로 뒤바뀌면 표류하는 상황이 되기 십상이다. 최근 몇몇 영화는 AI 시스템이 관객 선호도를 분석해 장르와 주제·시놉시스를 구성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배우와 연출진을 선정해 제작한다고 하니 창작의 영역은 이제 기술과 인간의 경계에 모호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악(樂)’에 대한 본질적 의미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악서인 ‘악학궤범’의 서문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공허한 데서 출발해 자연에서 이뤄진 것이라 정의했고, 악(樂)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조화’의 가치를 언급한 대목이다.

일찍이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선생은 지난 2006년 ‘디지로그’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동안 인류 문명이 산업화·정보화 등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환경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성숙한 조화가 실현된 ‘디지로그’를 우리가 가야 할 세상으로 제시한다. 스티브 잡스도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한 또 다른 언급인 것이다. 전통 예술이 첨단 기술과 만나 지향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전통 예술이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디지털의 세련된 도구를 얻는다면 우리 사회가 보다 풍성해지고 따뜻해지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정상입니다’ 라는 열화상 카메라의 목소리에 명쾌한 북장단이 더해진다면 마주하는 얼굴에 조금이라도 미소가 그려질 것 같다. /임재원 국립국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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