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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다닥다닥 성냥갑 사이…동네를 빛낸 건축철학

◆화운원(花雲園)

화운원의 야경모습. 전 가구에 테라스 배치를 위한 설계가 인상적이다.




서울 관악구 일대는 대학생·고시생 및 강남권 직장인 등 1인 가구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기존에 있던 단독주택이나 저층형 다세대·다가구주택을 고층·고밀도의 건물로 재건축해 임대를 놓는 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임대를 놓기 위해 세워진 건물들은 철저하게 경제성과 자본의 논리에 따른다. 몇 평짜리 집을 몇 층에 걸쳐 총 몇 가구를 집어넣을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된다. 가끔은 건축법을 위반하는 불법 증축·쪼개기 등의 방법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효율성과 수익성의 논리에 따라 지어진 건물은 거주 편의성 등을 고려한 특별 설계보다는 수익성을 극대화한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지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악구에 위치한 ‘화운원(花雲園)’은 수익형 건물이지만 그저 ‘수익’만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건물이다.



<수익성 논리 벗어난 건축주 철학으로 탄생한 건물>

관악구 쑥고개로에 위치한 ‘화운원’은 4층짜리 작은 상가 주택을 재건축해 세워진 건물이다. 화운원이 위치한 쑥고개길 주변은 토지 이용 계획상 준주거지역으로 일조 사선의 제한이 없고 용적률이 400%까지 가능하다. 건축주 또한 경제성의 논리에 입각해 욕심을 부렸다면 화운원은 50가구 이상을 수용하는 원룸 건물로 재건축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주의 철학이 있었기에 화운원이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건축주가 임차인에게 쾌적한 거주 환경을 제공하고 임차인은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한다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집이 되리라 생각했다. 이에 건축주는 설계자와 함께 네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임대 가구 수는 무리하게 늘리지 않을 것 △가구별 전용면적은 가능한 여유 있게 할 것 △다양한 평면 유형을 제공할 것 △근린생활시설과 임대 가구의 간섭을 최소화할 것 등이다.

이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총 가구 수를 25가구로 제한했고 이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가구 수 조정에 따라 절약된 공간에 외부 테라스를 설치했다. 전용면적과 공용면적도 넓어져 보다 여유로운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건물을 짓겠다는 건축주의 철학은 절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화운원의 설계를 맡은 오승현 서가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축주와의 상담 과정에서 건물을 재건축하기 전 건축주 본인이 생각한 적정 임대료 수입 및 관리 가능한 세대수 등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느꼈다”며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임차인의 편의를 생각하고 주변과 어우러진 건물을 짓겠다는 철학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화운원 임대가구 테라스. 전 가구에 외부 테라스를 배치해 거주편의를 제고했다




<층마다 다른 프로그램, 거주민 배려한 공용 공간 설계>

화운원 건물은 세 종류다. 2층은 근린생활시설, 3~6층은 오피스텔, 7~10층은 다세대주택으로 구성됐다.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현관, 주차 공간 등 공용 공간에도 세심한 설계가 적용됐다. 우선 1층에서 근린생활시설과 주거용 공간, 주차 공간의 출입 동선은 세 갈래로 분리했다. 근린생활시설 이용자들과 임차인들이 상호 간섭되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저층부 오피스텔은 1인 세대를 위한 원룸으로 구성돼 있다. 가구별로 면한 향과 조망 등의 조건이 상이하기에 평면 구성 방식이나 창의 크기·위치 등 또한 달라졌다. 상층부의 다세대주택은 2~3인의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다. 상층부는 가족 단위 임차인들의 거주 편의성을 위해 도로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세심한 배려는 곧 건축가에게는 난관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구성과 전 가구에 주어지는 외부 테라스,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건물의 전체적인 구성은 설계에 어려움을 더했다. 건물 특성상 전 층이 모두 다른 설계일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평형으로 구성해 위로 쭉 올리기만 하는 아파트나 일반 다가구·다세대주택과는 난이도부터가 달랐다. 오 대표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며 “상당히 어려운 설계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운원 남서측 전경


<장방형 대지 등 마주한 각종 악조건, 특화 설계로 극복해>

화운원이 들어선 대지 형태는 남향에 면한 폭이 좁은 긴 장방형으로 건축가에게 고심을 더했다. 남쪽을 바라보는 가구 수가 제한적이며 일부 가구는 거주자들이 비교적 기피하는 서향이나 북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지의 동쪽에는 11층 규모의 오피스텔이 위치해 창을 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또한 그리 크지 않은 면적의 좁고 긴 대지 속 건물은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고층화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건축가는 11층 규모의 이웃 건축물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서 있기에는 보행자들과 도로의 맞은편 이웃들에게 시각적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도로에 면한 파사드는 저층부의 경우 가로의 연속성을 위해 인접 대지 건축물과 외벽의 위치를 정렬하지만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점차 뒤로 물러나는 방식을 통해 매스의 위압감을 줄이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각 층마다 다양한 형상의 테라스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화운원은 동네 건축으로서 특징 있는 외관, 설계의 난이도 등을 인정받아 ‘2020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상대 심사위원은 “전 가구에 확장을 고려한 발코니가 아닌 실질적으로 외부 공간으로 접근이 가능한 발코니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외관의 주요 주제로서 드러남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며 “1층 주차 공간과 공용 로비 등 공동주택이 놓치는 많은 공용 공간이 건축사의 손을 거쳐 따뜻한 배려의 공간으로 탄생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화운원에 대해 “고밀화되는 도심지 공동 주거의 훌륭한 사례가 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권혁준 기자 awlkwon@sedaily.com 사진 제공=노경 작가

/권혁준 기자 awlkwon@sedaily.com·사진=노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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