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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가짜 문화재 논란, AI 등 활용한 과학적 감정으로 해결할 것" [서경이 만난 사람]

'문화유산 과학센터' 2024년 완공 예정…DB 구축·분석·복원 가능

반가사유상 '루브르 모나리자'처럼 대표 유물로 브랜드화 추진

해외 박물관과 네트워크 구축·문화교류…늘 새로운 볼거리 준비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이호재기자




“괜찮다 싶다가도 툭 불거지는 게 문화재 진위 논란입니다. 위작을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끔 탄로가 납니다. 위조범이 잡혔을 때죠. 반면 진짜를 가짜라고 한다면 완전범죄가 될 공산이 큽니다. 이런 심각한 사안임에도 진위 문제가 나오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다수결로 답을 찾고는 했는데, 진위 문제에서 다수결은 의미가 없습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올해 착공해 오는 2024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문화유산과학센터’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 박물관 건물 북쪽에 지상 3층~지하 1층, 연면적 9,350㎡ 규모로 들어설 예정인 센터는 최신의 보존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국가 문화유산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곳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 관장은 “지금까지 문화재 감정평가는 그 다양함과 복잡성에도 전문가의 안목과 경험에 의존하는 인문학적 평가 중심이었지만 최근 여러 과학기술을 문화재 연구에 적용하면서 더욱 객관성 있는 자료를 축적할 수 있게 됐다”면서 “이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다면 적어도 진위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힘줘 말했다. /대담=신경립 문화부장 klsin@sedaily.com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이호재기자


지난해 국보 제168호로 지정돼 있던 박물관 소장의 ‘백자 동화매국문 병’이 애초 알려졌던 15세기 조선 백자가 아니라 14세기 중국 유물로 판명되면서 국보에서 ‘지정 해제’돼 충격을 안겼다. 문화재의 진위 문제는 개인 소장이나 거래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재 정책과 박물관 운영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사안이다. 논란은 고미술품에 대한 저평가와 관련 시장 침체를 불러오고, 더욱이 박물관 소장품이나 기증품의 진위 문제는 해결 불가한 난제로 꼽혀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89년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국립박물관에서만 32년의 경력을 다진 민 관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난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10여 년 전 일본 오사카대에서 연수할 당시 일본 내 금동불의 불상 국적이 한국이냐 일본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엇갈리는 이유의 근거는 하나같이 ‘육안으로 봤을 때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일본 혹은 중국의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보고자 비파괴성분분석(XRF)으로 접근해 구리·주석·납 등의 성분비를 파악했고 일본의 고대 불상 100여 점과 한국·중국·유럽에서 반가사유상과 금동불의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그렇게 8년 동안 300점 정도의 데이터를 축적하니 한중일 금동불상의 지역별·시기별 특성이 파악되기 시작했습니다.”

금동불뿐만 아니라 종이는 지질, 먹은 유기물에 대한 탄소연대측정법, 목재는 기후에 따라 간격이 달라지는 나이테 분석으로 접근할 수 있다. 45년의 역사를 가진 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의료 현장에서 주로 활용되던 컴퓨터단층촬영(CT), X레이, 3D 스캔 등을 유물 성분 분석에 적용해 연간 유물 4,500점의 보존 처리와 약 1,200점의 과학적 조사 분석을 진행하며 자료를 구축했다.

민 관장이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지 3개월 만인 지난달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문화유산과학센터’ 조성 계획을 깜짝 발표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민 관장은 “과학적 분석을 진행하는 다른 해외 박물관이나 연구 기관이 단순 데이터를 갖고 있는 것과 달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를 빅데이터로 구축할 계획”이라며 “이런 데이터 기반 분석 시스템을 갖춘 기관은 외국에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축한 데이터 기반에 미술사의 양식론이 더해지면 객관적 판단 기준이 완성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물 판별 시스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정확도를 높일 방침이다. 다만 그는 “인간의 눈으로 축적된 양식론도 무시할 수 없기에 보완적으로 존중하되 결정적인 사안에서는 과학적 판정을 한다면 정확도를 99%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문화유산센터 건립에 274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물론 인력 확보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할 일들은 아직 남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재 감정·보존 분야는 관련 노하우를 축적한 ‘인력 싸움’이기에 해당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가 요구된다. 완공될 문화유산과학센터는 약 200만 점의 국립박물관 소장품뿐 아니라 전국 900여 곳의 국·공·사립박물관 소장품, 약 20만 건으로 파악된 국외 박물관 소장품 등 우리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업무를 도맡을 계획이다. 문화재 가치의 한류뿐 아니라 ‘K문화재 검증 시스템’이 주목받을 날도 머지않았다.

국보 제78호(왼쪽부터)와 제83호 금동 반가사유상.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민 관장의 또 다른 야심찬 프로젝트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의 브랜드 전략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을 박물관의 대표 유물로 내세워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의 전생담 속 등장인물로,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중국에서도 제작돼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파됐다.

민 관장은 “해외 박물관이 전시 관련 대여 요청을 할 때 가장 먼저, 많이 의뢰하는 유물이 반가사유상”이라며 “반가사유상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졌지만 완성도와 예술적 승화는 한국이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6세기 아시아의 불교 조각이지만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감동을 얻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보편성도 염두에 두고 ‘사유’를 키워드로 한 치유와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을 알리기 위한 ‘명품 영상물’ 제작을 비롯해 해외문화홍보원을 통한 세계 각국 한국문화원과의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경복궁 내에서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비약적 발전 속에 2019년 전체 관람객 335만 명으로 영국의 글로벌 매체 아트뉴스페이퍼가 집계한 세계 박물관 관람 순위에서 1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관람객은 전년 대비 77% 감소한 7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관람객 비중도 2019년 4.3%에서 지난해에는 2.3%로 떨어졌다. 1년의 절반 이상인 194일간 휴관했고 같은 기간 한국 방문객이 86% 급락한 영향이 크다. 대신 온라인 전시와 콘텐츠를 강화했다. 지난해 6월 개설한 영어 페이스북 계정은 구독자가 10만 명을 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영문 매거진 등 온오프라인 매체를 활용해 지역별·연령대별 공략을 구상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의 경쟁력 제고에 대해 민 관장은 “한국 문화재로는 우리가 전 세계 부동의 1위지만 근대화와 제국주의 과정에 세워진 유럽의 박물관과 비교한다면 유물의 다양성은 낮은 편”이라며 “여러 가지를 보고 싶어하는 관람객을 만족시키려면 우리 유물과 함께 다른 나라의 문화도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시절 외국 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는 ‘세계문명관’ 조성을 추진한 주인공이다. 그렇게 개관한 이집트관은 박물관의 인기 코스가 됐다. 최근에는 세계도자실과 일본실도 새로 열었다. 민 관장은 “외국 박물관들이 전시하지 못한 채 수장고에 둔 유물을 2년 정도 빌려와 대여·운반 비용만 투입해 무료 상설 전시로 선보이는 것도 가능하다”면서 “우리 문화재의 경쟁력에 더해 외교력으로 외국 박물관의 유물을 이용하고 박물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세계 10위의 박물관도 내다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옛것들을 모아둔 곳이라 박물관을 ‘올드(old)’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전시품은 오래된 것들이지만 전시 기법과 개념은 ‘가장 새로운 것’들을 보여드립니다. 옛것을 그저 예스럽게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잘 살펴 새롭고 현대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박물관은 관람객 수보다 높은 만족도, 재방문율이 그 수준을 가늠하게 합니다. 깊은 만족감, 뜻밖의 영감을 주고 문화와 역사를 알고 국민적 자부심을 더해줄 박물관, 언제 가더라도 늘 새로운 박물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사진=이호재 기자

◇He is…

△1966년 진천 출생 △1984년 청주 운호고 △1988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사 △1997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사 △1989~1998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 △2001~2004년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추진단 학예연구관 △2008년 일본 오사카대 문학연구과 일본동양미술사연구실 연수 △2010~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2012~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 △2016~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2018~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경주박물관장 △2020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장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이호재 기자 s020792@sedaily.com, 신경립 기자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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