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최고봉의 이름을 따 금오산이나 고위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남산 앞에 ‘신라 불교 문화재의 보고(寶庫)’ ‘천년 고도의 노천 박물관’ ‘민중 신앙의 산’과 같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계곡 곳곳에 산재한 다수의 불교 유적(불상·석탑 등)은 남산이 이러한 별칭을 얻는 데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하지만 다양한 수식어 때문에 생긴 막연한 기대와 경외심은 오히려 남산의 역사적 의미를 알아가고 증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남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라인의 눈으로 남산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산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왕경(王京)에 위치한 단일 산록에 다수의 불교 유적이 밀집·분포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계곡에 많은 불상과 탑이 짧은 거리를 두고 입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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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상(塔像)이 도저히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하기 어려운 장소에 조성된 예도 있다. 발굴로 확인된 삼릉계나 열암곡 불교 유적도 많은 사람이 장기간 머무르며 예불을 드릴 수 있는 환경 조건은 아니었다. 즉 남산의 불교 유적들은 왕경의 평지 사찰이 가지는 예불이나 강설·의례·생활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종합적인 공간과 기능을 가지기에는 어려운 환경들에 입지해 있다.
그렇다면 왜 평지가 아닌 험한 산지에, 그것도 하필 남산에 그 많은 탑과 불상이 조성됐을까. 신라 원효 스님이 저술한 불교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험한 산과 높은 바위, 푸른 소나무와 깊은 골짜기에 지혜로운 사람과 수행하는 이가 머문다고 이야기한다.
남산에 이러한 수행처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왕경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다는 점, 자연환경(돌산) 때문에 탑이나 불상을 만들기 쉽다는 점, 세속과 떨어져 수행을 증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남산의 불적이 왕경의 평지 사찰과 완전히 분리돼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평지의 본사와 산지의 수행처가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삼국유사’ 속 충담사(忠談師)의 일화처럼 스님은 평소 본사에 기거하면서 특정 시기나 기간에만 남산의 불적에 올라가 수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에 관해서는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김동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사찰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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