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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공화당의 의도적 무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우파의 '비판적 인종 이론' 집착은

'백색 분노' 에 영합하는 냉소적 시도

간단한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 안해

정치판서 성공 원하는 보수 가치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유명 언론인인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이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을 가리켜 “불쾌할 뿐 아니라 우둔하기까지 한 인물”이라고 공격했다. 칼슨의 독설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폭넓게 독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밀리 합참의장의 견해에 관해 대표적 우파 성향 방송인이 보인 반응이다.

닫힌 사고와 무지는 보수파의 핵심 가치가 돼버렸고 그 같은 가치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향한 그들의 공헌에 상관없이 우파의 적으로 간주된다.

밀리를 겨냥한 날 선 반응은 과거 몇 달간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을 집중적으로 펼친 우파 매체들이 기획한 분노의 일부였다. 폭스뉴스는 올 들어 지금까지 비판적 인종 이론을 2,000번 이상 언급했다. 비판적 인종 이론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이를 공격한다는 우파의 주장에 필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이 이론이 인종차별로 얼룩진 미국의 역사와 명시적 혹은 암시적으로 인종 간 불평등을 확대한 일련의 정책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이런 주장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털사 인종 대학살은 실제로 일어났고 이와 유사한 흑인 집단 살해 사건은 한두 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938년에 나온 연방주택청 교본이 “양립 불가능한 인종을 같은 커뮤니티에서 생활하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담고 있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의 우파는 간단한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자들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우파의 집착은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으로부터 일반의 관심을 돌려놓고 공화당이 존재 자체를 부정한 ‘백색 분노’에 영합하려는 냉소적인 시도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공화당이 펼쳐놓은 보수적인 정치판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정치인들이 의도적인 무지를 과시해야 하는 복수의 주제 가운데 하나다.

총애받는 공화당원이 되려면 인위적인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최소한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조치에 반대해야 한다. 진화론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최소한 노골적인 의구심을 표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당 지도부의 감세 타령에 무조건 동조해야 한다.

그들의 현실 부정은 특수 이익집단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은 화석연료 산업체의 이익을 지켜주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고 감세 신비주의는 억만장자 기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태도는 보수주의자들과 현실을 존중하는 제도 사이에 심각한 긴장감을 불러온다. 대학교수들의 민주당 성향을 문서화한 수두룩한 연구 결과는 교수 채용에 정치적 편견이 끼어들었음을 시사하는 유력한 증거다. 플로리다주 정부는 주립대에서 교수를 임용할 때 후보들의 아이디어와 관점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연례 설문 조사를 의무화했다. 공화당 성향의 교수들을 더 많이 임명하라는 명시적 지침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아갈 것을 권하는 행동이다.

교수 임용에 편견이 끼어들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자기선택(self-selection)이다. 2016년 대선에서 경찰관들이 대거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가 이들의 채용 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치안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려는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까.

지금의 공화당은 객관성을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학계의 당파성 조사에서 드러난 한 가지 특징은 생물학과 화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민주당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여러 분야에서 과학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재정학과도 민주당 성향의 교수들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보인다. 재정학 교수들 중 일부가 월스트리트에 고액의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최소한 이 분야에는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많으리라는 것이 일반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재정학 교수들조차 좀비 경제학을 신봉하는 공화당에 진저리를 친다.

미국의 군부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성향이 강하지만 지금의 현역 장교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열린 사고를 하는 나름 지적인 집단이다. 이들에게 높은 지적 수준과 열린 사고가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공화당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특성이기도 하다.

밀리에 대한 우파의 공격은 불가피하다. 무지에 올인한 우파는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기관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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