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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인간의 폭력, 종교를 희생양 삼다

■신의 전쟁-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지음, 교양인 펴냄

십자군·30년 전쟁·9·11테러 등

종교 '다툼 씨앗' 오명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 투쟁'에 더 가까워

신앙으로 포장…살상·권력 쟁취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는 신(神)의 이름으로 인간이 일으킨 대표적인 범죄로 손꼽힌다. 사진은 뉴욕의 랜드마크였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건물이 테러 공격으로 검은 연기에 휩싸인 모습/AP=연합뉴스




‘종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평화, 사랑, 수행과 같은 성스러운 무엇 못지않게, 폭력이나 전쟁, 아집, 권력 같은 단어를 새기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후자의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의 상당수는 20년 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미국 9·11 테러의 참상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3,000여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 간 이 사건 이후 종교는 전 지구적 폭력과 불관용, 분열의 원인으로 지목받아 왔다.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무분별한 테러와 살인, 이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은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전파해야 할 종교는 어느 순간 광기 어린 폭력을 행사하는 ‘악의 근원’이자 ‘다툼의 씨앗’이라는 오명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누군가는 역사를 되짚어 보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폭력적인 종교는 역사 속 중요한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었다고.

이 말에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그건 이상한 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종교적 믿음만이 멀쩡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한 광기를 일으킬 만한 강한 힘이 있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발언을 직접 언급하며 이러한 주장이 위험하고 과도하게 단순화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저서 ‘신의 전쟁’에서 현대 사회는 현대의 폭력적인 죄를 ‘종교’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몰고, 신앙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대 중동·중국·인도에서 시작해 근대 이후의 민족국가·근본주의 문제에게 이르는 천 년 역사를 되짚으며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에 대한 역사적 규명을 시도한다.

저자는 종교에서 비롯된 전쟁으로 알려진 인류사의 대표 사건들을 짚어보며 이 참상들이 실제로는 정치 투쟁의 결과에 가깝다는 주장을 펼친다. 오늘날 종교적 폭력의 상징이 된 ‘십자군’부터 살펴 보자. 십자군은 1095년 말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주도 아래 처음 결성됐다. 우르바누스는 동방의 기독교인을 무슬림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호소했지만, 사실 그의 진짜 계획은 다른 데 있었다. 기독교 세계의 군사적 방어를 구실로 당시 세(勢)를 넓혀가던 왕과 제후를 견제하는 한편 교회 권력을 동방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왕과 기사 계급도 주판알을 튕기며 가세했다. 이들은 전사로서의 명예욕, 소유지를 넓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원정에 응했다. 십자군은 이처럼 매우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결성됐으며, 그 결과는 대규모 살상이었다. 우르바누스가 ‘무슬림의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라’라는 신앙적인 구호로 한껏 포장했지만, 십자군 원정은 교회의 ‘리베르타스’, 즉 특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공작이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16~17세기 종교전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30년 전쟁’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한다. 저자는 30년 전쟁이 근대적인 의미에서 “전형적으로 종교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이(異)종교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편’이 되어 싸우는 일이 왕왕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톨릭을 수호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프로테스탄트 제후 다수의 지원을 받아 교황·프랑스 가톨릭 왕들과 싸웠다. 싸움의 목적이 신앙이 아님은 분명했다. 이들은 균열이 일던 봉건사회에서 자신의 영토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쟁을 벌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교적 최근 목격한,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일으킨 잔혹한 테러와 민간인 살인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는 극단주의 무슬림의 테러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강압적 근대화가 낳은 폭력이라고 반박한다. 또 테러리즘의 핵심은 언제나 ‘권력을 얻거나 지키는 것’으로 종교·경제·사회적 동기가 개입해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종교가 일련의 폭력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인류가 겪는 분열과 분쟁에 대해 종교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종교 본연의 영성 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례적인 신앙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헌신에 힘쓸 때 종교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인류사에서 종교는 그 자체로 권력이요, 정치였던 때가 많았다.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사안을 두고 ‘종교가 아닌 정치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 접근법이 과연 타당할까.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사료를 토대로 한 분석과 상세한 설명, 저자의 통찰이 인상적이다. 3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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