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과 검찰의 구체적인 유착 가능성을 의심할 만큼의 언동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명백히 기자로서의 취재 윤리를 위반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나, 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언론인이 취재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를 형벌로서 단죄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한다.”
수감 중인 취재원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정·관계 인사의 비리 정보를 제보하라고 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동재 채널A 전 기자가 1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강요 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후배 백모 기자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기자가 취재원에게 보낸 다섯 차례의 ‘옥중 서신’이나,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전 대표의 대리인이자 ‘제보자X'로 불리는 지모씨와의 만남에서 한 말들을 강요로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에서다.
다만, 재판부는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이 전 기자의 행동이 “취재윤리에는 어긋난다”며 이 전 기자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적 가치인 만큼 취재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으로 불리며 ‘추·윤 갈등'의 뇌관이 됐던 사건에 대해 이 전 기자가 무죄 선고를 받으며 후폭풍이 예상된다.
옥중서신 5차례·제보자 지씨 만남…法 “강요로 볼 수 없다”
홍 부장판사는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다섯 차례 옥중 서신을 보낸 것과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이자 ‘제보자X’ 지 모씨와의 만남 모두 강요죄의 성립 요건인 ‘구체적 해악의 고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홍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정관계 인사의 비리에 관한 제보를 하면 채널A에서 이를 보도하여 공론화 시킴으로써 피해자가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기자가 다섯 차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취재 정보를 제공하면 선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고, 이 내용이 이 전 기자와 지씨와의 만남 과정에서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씨와의 만남을 통한 강요 행위도 홍 부장판사는 인정하지 않았다.이 전 기자의 발언 취지는 앞선 편지에 나온 것처럼 ‘정보를 제공하면 선처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지, ‘비리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홍 부장판사는 “검사의 공소내용처럼 ‘제보하지 않으면 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확장 해석한 것이며, 편지 문언의 의미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제보자 X의 함정” 인정… 지씨 정관계 로비 리스트 있는 양 행동해
한편 피해자 대리인 자격으로 이 전 기자와의 만남에 나온 지씨가 있지도 않은 ‘정관계 인사에 대한 금품제공 장부 및 송금 자료’를 언급해 이 전 기자가 녹취록을 제공한 상황도 언급됐다.
홍 부장판사는 지씨가 ‘이철과 그 가족이 어떤 혐의로 수사를 받는 지, 향후 수사 계획은 어떠한지, 피해자 이철이 검찰로부터 소환 요구를 받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묻지 않고, 검찰 관계자를 통하여 피해자에 대한 선처약속 등을 해준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정관계 인사에 대한 금풍제공 장부나 송금자료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 점을 지적했다.
결국 이 전 기자 등이 지씨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녹취록을 보여준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선처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홍 부장판사는 “지씨는 피해자에게 존재하지 않는 정치인의 금품 제공 장부나 송금 자료가 있는 것처럼 언동해 피고인들이 녹취록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또 “녹취록이 피해자에게 피고인이 검찰과 연결된 것으로 믿게 할 자료라고 하더라도, 이는 지씨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선처를 약속하며 한 행동일 뿐 해악을 고지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法 “취재윤리 위반은 도덕적 비난 마땅, 이번 판결 면죄부 아냐”
다만 홍 부장판사는 이동재 전 채널A기자에 대해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이 전 기자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취재 행위 인 것은 분명하지만, 형사 처벌할 시 언론의 자유가 위축 될 수 있다며 이례적으로 설명문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명시하기도 했다.
홍 부장판사는 “이씨는 공신력 있는 언론사의 기자인데도 특종 취재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중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피해자를 압박하고, 그 가족에 대한 처벌 가능성까지 운운하며 취재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 했다”며 “이러한 행위는 명백히 기자로서의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언론인이 취재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를 형벌로서 단죄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죄 선고가 취재 윤리를 어긴 데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검언 유착’ 의혹으로 ‘추·윤 갈등’ 기폭제였으나…무죄 선고에 따라 후폭풍
이 전 기자의 무죄 선고에 따른 파장도 불가피하다. 이 전 기자 사건은 ‘검·언 유착’으로 규정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갈등의 기폭제가 됐다. 당시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게 지난해 7월 이 사건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채널A 법조팀 기자인 이씨가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전 대표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위를 제보하라’며 강압적으로 접근한 데서 시작했다. 이 전 기자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제보를 강요했다고 밝혀 ‘검·언유착’ 이라고 불렸다.
결국 1년 만에 구속 기소된 핵심 피고인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추 전 장관과 윤 전 총장 간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된 이번 수사가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