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능력이 있고 자녀를 잘 길러온 외국인 부모가 단지 한국인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양육권을 뺏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양육자를 바꾸기 위해선 정당하고 명백한 사유가 있어야하고, 양육자 지정에서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양육적합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게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에 근거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의 여성 A씨와 한국 국적 남성 B씨의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 상고심에서 남편 B씨를 자녀 친권자·양육자로 지정했던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두 사람은 2015년 9월 혼인신고를 한 뒤로 자녀 두 명을 낳았다. 2018년 8월 경 A씨는 남편과의 불화로 큰딸을 데리고 별거에 들어갔으며 부부는 약 1년 뒤 서로를 이혼 청구를 했다.
큰딸 양육권 둔 법정 다툼…1·2심 “A씨 한국어 능력 부족…남편에 양육권”
이혼 과정에서 쟁점은 큰딸에 대한 양육권이었다.아내 A씨는 자신이 큰딸의 양육자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B씨가 자신 명의 아파트는 있으나, 뚜렷한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양육자로 부적격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A씨는 별거 직후 취직해 월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는 상황으로 모친의 도움을 받으며 별다른 문제 없이 2년 넘게 큰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1·2심은 두 사람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였으나 자녀의 친권자·양육자는 남편 B씨로 지정했다. 1·2심은 A씨가 양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고 거주지나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아 양육환경과 능력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일하는 동안 양육을 보조하는 A씨의 모친은 아예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자녀들의 언어 습득이나 향후 유치원, 학교생활 적응에 우려도 있다고 봤다.
대법 “한국어 능력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양육권 박탈은 추상적이고 막연 판단”, 사건 파기환송
대법원서 판단은 뒤집혔다. 대법원은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보다 대한민국 국민인 상대방이 양육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이라며 양육 상태를 변경하는 양육자 지정은 이를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명백해야 한다며 지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A씨가 만 2세인 큰딸을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하여 평온하게 양육하고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양육 환경, 애정과 양육의사, 경제적 능력, 큰 딸과의 친밀도 등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거나 남편 B씨에 비해 적합하지 못하다고 볼만한 구체적인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봤다.
한국어 능력 부족에 대해서 대법원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교육여건이 확립돼있어 한국어를 습득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므로 부모의 한국어 능력이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능력 역시 사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계속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가정법원은 양육자 지정에서 한국어 능력에 대한 고려가 자칫 출신 국가 등을 차별하는 의도에서 비롯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과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육 상태의 변경을 가져오는 양육자 지정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와 외국인 배우자의 양육적합성 판단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언했다”며 “다문화가정의 존중 및 아동의 복리라는 차원에서 가정법원의 양육자 지정에 관하여 중요한 원칙과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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