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소득세는 하도 복잡해서 세무사도 상담을 포기한 ‘양포세’로 불린다. 20번 넘게 발표한 정부 부동산 대책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주포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포기한 은행원이라는 뜻이다. 주택과 전세대출에 미로처럼 설계된 규제가 수시로 바뀌어 담당 창구 직원도 헷갈리는 지경이 됐다.
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지난 8월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중단했다.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이 증가한 은행들에 국한됐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중 부동산 관련 대출 길이 막혀버렸다. 당시 필자가 이 칼럼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결과적으로 가을 이사 철에 맞춰 주택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려던 많은 사람이 큰 낭패를 겪었다.
청와대에는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는 청원이 줄줄이 올라왔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실수요자가 전세대출 등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금융 당국이 4분기 전세대출을 유연하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동안 은행 대출 중단 조치로 계약하고도 이사를 못해 계약금을 날린 사람이 상당수다. 이번 주부터 재개된 대출을 이용해 이사하려면 지금 집을 구해도 겨울 초입이 돼서야 가능하니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 방침이 임시방편적이다. 금융 당국은 “실수요자 대출이 중단되지 않게 4분기 전세대출을 총량 관리 한도에서 제외하되 불요불급한 전세대출이 없도록 꼼꼼히 심사”한다고 했다. 올해 말까지만 예외를 둔다는 말인데 단서가 붙어 그 자체도 불확실하다. 그 외에 4분기 중 입주하는 사업장에 잔금대출이 이뤄지도록 관리한다고 했다. 이 방침대로라면 아파트 잔금 외의 중도금 대출이나 무주택자가 집 사는 데 필요한 대출은 풀리지 않는다.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카드대출은 더 묶인다.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총량제에 연계돼 “연말까지 신규 취급이 사실상 끝났다”고 하는 은행 담당자도 있다. ‘대출 보릿고개’가 연례행사처럼 연말에 생겨 소비자들이 애를 먹는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금융을 원래 기능대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첫째, 주택 문제에 금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집값이나 전셋값 안정은 기본적으로 시장 수급을 원활히 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정부 역할은 취약 계층에 대한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금융기관 규제나 지원 요청도 여기에 한정해야 한다.
둘째, 복잡다기한 규제를 단순화해야 한다. 정부는 가계대출에 대해 차주의 상환 능력을 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 대출을 단계별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담보가 우선이며 대출 세부 상품별로 요건도 까다롭고 복잡한 현재 대출 형태에서 진일보한 방안이다. 적용을 넓혀나가되 문제점을 보완하며 서서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출총량 규제와 같은 우격다짐식의 감독을 지양해야 한다. 금융 당국이 규제 권한을 가지는 것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건전성은 대출 총액보다 자기자본 비율, 연체율, 대손충당금 비율 등에 더 영향을 받는다. 은행이 이러한 기준을 지키면서 자기 책임하에 대출을 관리하고 부실을 줄여나갈 때 해당 은행과 금융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글로벌 금융 허브로 만들자는 얘기가 많았지만 골드만삭스와 HSBC·UBS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한국씨티은행도 소매금융 사업을 접기로 했다. 정말로 금융 허브가 되려면 정부가 은행 영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수시로 내려보내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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