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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킹메이커]정의로운 과정이 먼저인가, 어쨌든 이기는게 우선인가

1960~70년대 '정치 거목' 김대중

'선거판 여우' 엄창록 등 실화 기반

'빛과 그림자' 구도로 상상력 더해

드라마 같던 당대 정치판 생생히

오는 29일 개봉 예정인 한국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난세(亂世)였다. 식민 압제와 민족상잔이 휩쓸고 간 땅 위엔 가난과 불신만이 가을 낙엽처럼 뒹굴었다. 부패한 독재 정권은 틈만 나면 반공(反共) 카드를 흔들며 불만에 찬 국민들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래도 여론이 심상치 않으면 막무가내 선물 공세를 펼쳤다. 가가호호 문을 두드려 막걸리며 와이셔츠, 고무신, 현금을 건넸다. 선물을 받아 쥔 이들은 잠시 성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민주 선거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정치가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정의로운 승리 만이 답이라 믿으며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결과는 늘 낙선이었다. 고향을 떠나 멀리 강원도 인제에서 네 번째 도전에 나선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운명처럼 다가와 그에게 말한다. “플라톤은 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했었죠. 제가 그림자가 되어 돕겠습니다.”

한국 현대 정치사를 소재로 한,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영화 한 편이 오는 29일 개봉을 예고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으로 이름을 알린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다. 영화는 ‘영화적 허구’ 임을 강조하지만, 스크린 속 연단에 오른 주인공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입을 떼는 순간 관객들은 자연스레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 정치의 거목’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그를 찾아온 남자는 누구일까. 당시 ‘선거판의 여우’ ‘마타도어의 귀재’ 등으로 불리며 선거판을 들었다 놨다 했다고 전해지는 엄창록이라는 인물이다. 변 감독은 실존 인물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에 창작자의 상상력을 잔뜩 입혀 전국구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라는 인물로 재가공해냈다. 이들을 중심으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당대 한국 선거판은 스크린 속 2시간의 서사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빛과 그림자’다. 승리의 길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믿는 김운범과 승리하지 않으면 정의는 존재할 수 없다 주장하는 서창대의 길은 같을 수 없다. 게다가 김운범은 대중 앞에 당당하게 서지만, 서창대는 늘 그의 뒤에 숨어 있다. 이북 출신 서창대는 머리가 아무리 비상해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족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영화는 조명, 미술 등의 장치를 통해서도 두 사람의 ‘빛과 그림자’ 구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주요 장면에서 다채로운 방법으로 음영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사무실 장면에서 김운범의 그림자 속에 서창대가 갇히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킹메이커 서창대의 처지를 은유한다. 1960~1970년대가 주요 배경인 만큼 소품의 디테일도 하나 하나 놓치지 않았다. 선거 현장 피켓이나 현수막의 글씨까지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똑같이 재현했다.







‘투톱’ 주연인 설경구와 이선균 외에도 출연 배우들 모두가 뛰어난 연기로 존재감을 스스로 증명한다. 김운범의 평생 정치 라이벌인 김영호 역은 유재명이 맡아 스크린 장악력을 과시한다. 장기 집권 대통령의 최측근 지략가인 이 실장 역으로는 조우진이 열연했다. 또 박인환, 이해영, 김성오, 전배수, 서은수, 윤경호와 특별 출연한 배종옥까지 스크린에 등장해 자칫 무겁게 가라앉거나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긴장감과 박진감을 더해 준다. 결정적 순간에 유머 요소를 살려내는 것도 관록 있는 연기자들의 몫이다. 특히 이들의 배역은 모두 역사 속 실존 인물과 연결돼 있어 관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킹메이커’의 흥행 여부는 코로나 19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초미의 관심사다. 올해 ‘모가디슈’ 외에는 눈에 띄게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가 전무하고, 연내 개봉을 예정했던 기대작들이 줄줄이 기약 없는 개봉 연기를 결정한 가운데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팬데믹 직전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작인 ‘남산의 부장들(2020)’과 시대적 배경이 같다는 점에서도 또 한번 정치 드라마의 흥행을 기대해볼 만하다. 러닝 타임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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