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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철강 2.7만명 '직고용'할판…신규채용 막히고 인력운용 비상

■사법리스크에 갇힌 기업들

현대차도 '불법파견' 판결에 직고용하느라 생산직 못 뽑아

'신의칙' 뒤집는 통상임금 결정에 혼란 커지고 비용 급증

중대재해법까지 발등의 불…4차산업에 맞는 법 정비 시급

지난 9월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전국 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등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통제센터를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0년 10월 대법원이 울산 공장 사내 하도급 업체 근로자 일부가 제기한 ‘불법 파견’ 소송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 충격파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소송은 일부 근로자가 제기했지만 현대차는 2014년부터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특별 채용의 형태로 직고용했다. 2020년까지 현대차가 정규직으로 직고용한 인원은 9,179명에 달한다. 현대차는 이 기간 동안 생산직 근로자 채용을 중단했다.

공장 자동화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그러잖아도 공장 인력 수요가 줄어드는데 법원의 ‘불법 파견’ 판결까지 겹쳐 고용을 아예 중단해버린 것이다. 이런 사태는 하도급과 파견에 대한 법 규정의 모호성, 기존 근로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법원, ‘하도급은 악, 직고용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등 여러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 기업이 사법 리스크에 떨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금리 인상, 미중 갈등 등 대외적 악재에 사법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기업은 본연의 경영 활동보다 법적 대응에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은 내년 대선 이후 정부가 바뀌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사내 하도급 직고용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다. 당장 포스코는 사내 하도급의 불법 파견 여부를 따지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포스코의 사내 하도급 직원 수는 1만 4,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사례를 따라 대법원이 사내 하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규정하면 포스코는 이들 직원 전원을 직고용하거나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포스코는 사실상 상당 기간 신규 채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GM도 불법 파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인력 운용에 애를 먹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창원·부평 사업장의 하도급 근로자 1,700여 명을 직고용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대법원에서 패소한 현대위아도 소송을 제기한 80여 명을 포함해 전국 사업장에 있는 2,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생산직 정규직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재계 관계자는 “하도급과 파견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기존 근로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는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취업준비생에게도 악영향을 주며, 무엇보다 기존 근로자와의 형평성까지 해친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일부 노조들은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회사 측의 제안을 거부하고 본사 직교용을 요구해 ‘노노 갈등’까지 야기하는 상황이다.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소송도 법원에 다수 계류 중이다. 과거에는 기존 임금체계를 존중하는 ‘신의칙 인정’ 사례가 많았으나 수년 전부터 신의칙을 부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동 분야에는 파견을 비롯해 모호한 법규정으로 법원의 해석이 달라지는 제도가 많다”며 “노동시장 현실에 맞지 않는 과도하고 전근대적인 노동 규제가 적지 않다”고 했다.

중대 산재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 등을 강력히 형사처벌(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50인 미만 기업은 오는 2024년 1월 27일) 시행될 예정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모호한 법률 규정 탓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기업 31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6.5%가 ‘준비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의무 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가장 많았다. 여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양형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사고 예방 조치 강화라는 정부의 의무는 뒤로 한 채 처벌 강화라는 손쉬운 방법만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는 협력 업체 직원까지 직고용을 요구하는 소송이 늘어나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하도급과 파견, 통상임금 등 모호한 규정을 정비하는 한편 노동 유연성 제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법 정비 작업을 병행해야 기업의 사법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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