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DB하이텍이 존폐 기로를 딛고 매출 1조 원이 넘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해 연간 매출은 전년보다 26% 늘어난 1조 1,823억 원, 영업이익은 54%나 급증한 3,69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DB하이텍은 10년 전까지도 생사가 불투명한 적자 회사였다. 1997년 D램 업체로 설립됐지만 외환 위기를 맞아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메모리 반도체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파운드리로 방향을 틀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룹(옛 동부)의 운명을 걸고 아남반도체를 인수하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우량 계열사와 합병까지 했지만 높은 기술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너의 대규모 사재 출연에도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매물로 나와 중국에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계속된 투자는 값진 열매로 돌아왔다. 2014년 드디어 흑자로 전환했고 채권단도 매각을 철회하며 독자 생존 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대란 속에서 8인치 웨이퍼를 기반으로 최대 수혜 기업이 됐다.
DB하이텍의 반전 스토리는 금융 논리에 집착한 정부·채권단의 왜곡된 결정으로 좌초한 한진해운과 대조를 이룬다. 정부의 회생 의지가 있었다면 한진해운은 지난해 해운 호황 국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을 것이다. 이런데도 최근 핵심 기업 구조조정은 표류하고 좀비 기업 옥석 가리기도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과거 위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일단 문을 닫은 제조업이 부활하려면 수십 배의 고통과 비용이 따른다. 미국·일본 등 강대국들도 반도체 등 전략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반쪽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부터 뜯어고치고 투자를 가로막는 족쇄를 혁파해야 한다. 3년이 넘도록 반도체 공장도 착공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제조업 강국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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