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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마을에 한옥이 없다" 흙손 장인의 한탄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한식 미장 46년 김진욱 장인건설 대표

숭례문·창덕궁·서오능·상원사 등

70여 개 문화재 복원 작업 참여

"원형 있는 그대로 원칙 무시한 채

비용 아끼려 현대 공법 적용한 건

우리 고유의 것이라 말할 수 없어"

123층 건물도 한옥과 기법 같아

전통 방식에 대한 자부심 가져야

김진욱 장인건설 대표가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 있는 '아미산'에 들어갈 무늬를 다듬고 있다. 아미산은 경회루에서 나온 흙을 산처럼 쌓아 놓아 만든 곳이다.




서울 북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한옥이다. 대문을 열면 드러나는 중정, 검붉은 기와와 나무로 만든 대들보, 문풍지를 두른 창살, 봄이면 앞이 탁 트인 대청마루에 살랑살랑 바람 등등. 누구나 한 번쯤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서울 은평, 전주, 인천 강화 등 전국 곳곳에 한옥 마을이 속속 생겨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지난 2011년 대한민국 미장 명장에 오른 김진욱(65) 장인건설 대표는 달리 평가한다. 김 대표의 눈에는 북촌에도, 은평에도 제대로 된 한옥이 한 채도 보이지 않는다. “한옥이라고 하지만 거의 모두 시멘트 또는 합판 등을 이용해 지은 것입니다. 전통 한식 미장 방식인 회(灰) 반죽으로 만든 곳은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단언컨대 우리나라 한옥 마을에는 한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24일 경기도 군포 대야미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옥 마을은 물론 웬만한 절조차도 새끼줄을 엮고 황토를 바른 전통 한식 미장을 한 곳을 찾기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는 46년간 ‘흙손’을 쥐고 살았던 한식 미장의 대가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문화재 복원에 참여하면서부터. 숭례문과 창덕궁·경희궁·창경궁·덕수궁 등 궁궐은 물론 사릉·서오릉 등 왕릉, 정약용 생가, 강원도 상원사 복원 작업과 같은 것도 그의 손을 거쳤다. 이렇게 복원된 문화재만 지난 30년간 70곳이 넘는다. 한국건축시공기능장협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김진욱 대표


복원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안타까움이다. 김 대표는 “문화재는 원형 복원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전에는 시멘트를 이용하거나 일본식 방법으로 미장을 한 경우가 있다”며 “우리 고유의 것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전통 미장 방식을 사용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시멘트와 회의 원재료는 석회로 같다. 문제는 시멘트는 물과 만나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금방 굳도록 만들었지만 회는 석회 그대로이기 때문에 물을 부어도 굳지 않는다. 말리려면 공기를 통해 서서히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10시간이면 완성되는 시멘트와는 비교조차 안 된다. “한옥을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시멘트로 하는 것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비용이 듭니다.” 김 대표의 솔직한 고백이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만 그가 한식 미장을 포기하지 않는 데는 전통 보전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친환경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전통 미장은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가공되지 않는 재료인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며 “자연 그대로의 원료이기 때문에 시멘트처럼 폐기물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진욱 대표


전통 건축 방식에 대한 자부심도 한몫했다. 그는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와 한옥은 재료만 다를 뿐 기법은 똑같다고 했다. 김 대표는 “한식 미장은 벽체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 가지 등을 새끼로 엮고 흙을 넣는 방식”이라며 “새끼 대신 철근을 이용한 것 말고는 모든 방식이 똑같다”고 주장했다. 시멘트 벽체 구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통 방식에서는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중방’을 설치한다. 중방과 중방 사이에는 벽체의 힘살이 되도록 부자재(중깃)를 새끼로 엮은 후 흙을 바른다. 현대 철근 콘트리트 방식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결국 한국 건축을 배우면 현대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어릴 적 선생님을 꿈꾸었다고 한다. 먹고살기 힘들어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나오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이룰 수 없을 줄 알았던 그 꿈을 미장이 실현해줬다. 산업현장교수로 활동하고 전통문화대 전통문화교육원 객원교수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미장으로 오랫동안 미뤄왔던 목표였던 ‘나눔’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는 2007년부터 15년간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사랑의 집수리’라는 봉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대표는 “손재주가 있으니 남을 위해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기부는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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