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과잉 편성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 은행의 부도 위험 증가로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 건전성 악화가 금융 위기를 초래하는 채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보증 채널’이다. 은행 건전성은 자체 건전성 외에도 유사시 정부 지원 가능성의 영향을 받는데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은행 건전성도 낮아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재정 수입 대비 은행권 총자산이 620%(2017년 기준)로 전체 선진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 위기를 비롯한 유사시 정부가 은행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크지 않은 셈이다. 더욱이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재정 건전성 악화로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가 상승하면 국채 발행도 쉽지 않다.
다음은 ‘국채 채널’로 은행이 국채의 주요 투자자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재정 건전성이 나빠져 국채의 신용 부도 위험이 상승하면 국채 가치가 떨어지는데 그 결과 은행의 자산 건전성 하락으로 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2020년 기준 전체 국고채 총잔액의 약 40%를 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은행권의 총자산 중 국고채 투자 비중도 1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상 기류 속에 국회가 추경 규모를 정부안인 14조 원에서 54조 원으로 증액하려고 시도하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8일에는 국고채 3년물이 2.303%로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5년 동안 국가 채무가 400조 원 넘게 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도 36%에서 50%선으로 급등했는데도 여야는 대선용 돈 풀기를 위한 추경 확대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2010년대 초반의 유럽 재정 위기에서 선진국도 나랏빚 급증을 막지 못하면 금융 위기에 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여야 정치권이 추경 확대를 위한 담합을 멈추고 다른 선진국처럼 재정 건전성 강화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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