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이벤트인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7일 결국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13일 안 후보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뒤 공개 석상에서 단 한 번도 실무 협상에 대해 말하지 않던 윤 후보가 장막을 걷고 전면에 나섰다. 윤 후보는 이날 보수 텃밭인 경북 영주 유세 일정도 취소한 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윤 후보는 국민의힘은 장제원 의원, 국민의당은 이태규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나서 이날 새벽 안 후보와의 단일화 회동을 위한 릴레이 협상을 진행한 사실까지 공개했다.
국민의힘도 양측이 7일부터 착수한 단일화를 위한 실무 협상 일지와 세부 내용까지 공개했다. 20일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며 윤 후보를 향해 공개적으로 “묵묵부답이었다”고 말한 안 후보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를 들은 안 후보가 전남 여수 유세에서 “2월 13일날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국민 경선을 제안했다”며 “오늘 아침에 전해온 내용이 (기존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단일화 회동을)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재반박하면서 양측의 단일화 협상 상황은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정치권은 이날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단일화 과정을 공개하면서 안 후보와의 심각한 인식 차이를 드러낸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윤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을 제안했을 때도 다른 협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단일화 협상의 전권을 부여받은 장 의원과 이 본부장이 논의를 할 때도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논의가 오른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자료를 통해 윤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도 가능하다”고 국민의당 측에 전한 말도 공유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민의힘의 입장은 안 후보가 13일 최초로 제안한 단일화 방식을 심각하게 오독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단일화 실무 협상이 시작될 당시에 제안한 공동정부는 그동안 윤 후보가 주장해온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식 단일화에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 국무총리직과 장관 지명권 등을 양보하며 후보 단일화를 했다.
문제는 안 후보는 이 같은 방안에 더해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론 내자고 제안했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13일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제안하며 ‘차기 정부의 국정 비전과 혁신 과제를 국민 앞에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후’라는 조건을 달았다. 안 후보의 제안은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 후보를 뽑되 결과가 어떻게 되든 국정 비전을 함께하는 공동정부도 구성하는 방식에 가까운 셈이다. 이날 안 후보가 윤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립서비스만 계속 하시는 것은 정치 도의상으로 맞지 않고 국민께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 경선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는데 없었다는 게 협상 상대방으로서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단일화 제안을 심각하게 오독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단일화 협상을 두고 갈등이 공개적으로 분출되면서 양당은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로 인한 최대 효과는 거둘 수 없게 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 대선에 쓰일 투표용지를 인쇄한다. 이날 밤 두 후보가 전격 단일화에 합의해 한 명이 사퇴하지 않는 한 투표용지에는 ‘2번 윤석열’ ‘4번 안철수’의 이름이 각각 오르게 된다.
시간에 쫓기는 쪽은 윤 후보다. 그는 안 후보에게 “이날 지금이라도 안 후보께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신다면 제가 지방을 가는 중이라도 언제든 차를 돌려 직접 찾아뵙고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기자들을 만나 “제가 이미 협상에 대해 시한 종료됐다고 선언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양측의 논의 테이블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물밑 협상은 결렬됐지만 단일화 협상 자체가 전 국민에게 공개됐기 때문이다. 단일화 여론이 커지면 두 후보와 양당 역시 민심에 결국 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주고받는 게 있어야만 단일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볼 때 자존심과 명분이 서면 투표 전날에도 단일화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오는 3월 4일 이전까지 극적 단일화의 기회는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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