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불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능이라 말하거나 심지어 각자가 믿는 종교의 교리를 빌려와 그것이 업보 또는 신의 형벌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불행해 마땅한 존재로 개인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정말 속상한 것은, 불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저항할 힘이 없어 스스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마라. 스스로 무례해지지 마라.’ (최다혜, ‘아무렇지 않다’, 2022년 씨네21북스 펴냄)
어떤 무례는 해맑게 경쾌하다. 철없는 농담처럼, 평생 그늘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의 여유처럼 불행한 한 사람의 마음을 할퀴고도 좌중에 청량한 웃음을 남긴다. 5년간 시간강사로 일했고, 10년 넘게 프리랜서 그림 작가로 살았던 최다혜 작가의 그래픽 노블에는 무례한 사람들 앞에 수시로 내던져지는 세 여자가 등장한다. 세 여자는 소속이 없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수입이 불안정하다. 세상은 손쉽게 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최 작가의 묵직한 붓질 위로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무례와 불행을 간신히 견디는 얼굴이, 잠시 기대했다가 더 크게 실망하고 상처받는 이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현실에서도 이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여러 사람이 떠드는 자리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홀로 떨리던 얼굴들을.
불행은 난폭하고 무례하다. 그리고 세상은 당신에게 원래 그런 거라고, 불행은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세 여자는 각자 이 무례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무례해지지 않기 위한 결단을 내린다. 작가는 그것이 옳거나 그른 선택인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이들이 계속 ‘살아가기’만을 바랐다고 썼다. 당신도 불행과 무례에 지지 않고서 끝내 살아가기를.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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