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세계 미술계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서방 각국 미술관과 큐레이터, 예술가들이 러시아 부호들과 거리를 두는 와중에도 일부 수집가들은 여전히 러시아 예술가와 경매회사들로부터 작품을 사는데 수백만 달러를 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러시아 엘리트들의 재산을 추적, 압류하는 등 제재를 적용한 가운데 나왔다.
미국 미술품 수집가 앤디 홀은 최근 러시아 머큐리 그룹 산하 필립스사의 주관으로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경매를 보이콧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술 시장 전체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미술 시장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말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3월 첫째주 런던 경매에서의 주요 작품 판매액이 총 7억 달러(약 8700억 원)에 이르는 등 미술 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란 정치적 위기와는 동떨어진 분위기를 보였다.
그러나 현재 미술 경매 시장에서 러시아 고객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글로벌 경매회사 소더비 측은 최근 경매에 세계 46개국 입찰자들이 참여했지만 러시아는 없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은 작품 판매를 위탁하지 않았고 러시아 수입가들은 중국인 수집가들로 대체돼 더이상 큰 손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필립스도 매출에서 러시아인 입찰이 차지하는 비중이 오랫동안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 부호들이 미술계를 지배했던 2000년대 초와는 대조적이다. 당시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러시아 억만장자들은 최고가의 작품을 사들이고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미술계를 장악했다. 러시아 수집가들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는 조 비커리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러시아 미술품의 경매 매출이 바닥을 치는 등 미술 시장에서 러시아인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런던과 상하이 경매에서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마르크 샤갈 등 화가의 작품은 주로 아시아 수집가들에게 팔렸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러시아인의 부재를 아시아인들의 입찰이 대신한다며, 러시아인이 좋아하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도 중국 바이어가 구매했다고 전했다.
반면, 유럽 미술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상당한 경각심을 보이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친러 행보를 보이는 중국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마티스 미술관은 중국과 러시아의 유대를 이유로 중국 UCCA 미술센터에 작품 약 300점을 대여하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UCCA는 이달 26일 예정이었던 전시회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에르미타주 암스테르담 미술관은 지난주 '러시아 아방가르드:예술 혁명'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중단하고, 러시아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30년간의 파트너십을 중단했다. 영국 왕립예술원 이사인 러시아 억만장자 페트르 에벤은 최근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왕립예술원은 아벤이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에 기부했던 금액도 돌려줬다.
러시아도 반격하는 모습이다. 러시아 문화부와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이탈리아 밀라노 박물관에 대여한 작품들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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