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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사랑한 철학도…"작품의 소곤거림 들려주고 싶었죠"

[CEO&스토리]

◆국내 정상급 아트페어 키운 '변원경 아트부산 대표'

獨 유학때 작가들 도우며 미술계와 인연

실력파 발굴·기획 뚝심에 갤러리에 호평

아트바젤홍콩 등 거쳐 아트부산 키 잡아

가벽 높이고 조명 교체…공간의 품격 높여

큰손 컬렉터들 몰리며 아트페어 급성장

"바다 낀 도시, 예술 들썩이는 부산 될 것"

[CEO스토리] 변원경 아트부산 대표./권욱 기자




사람이 뭔가를 시작했을 때의 계기를 설명하기 참 애매할 때가 있다. 독일에서 철학 공부로 유학 중이었다가 아트비즈니스에 뛰어든 변원경(50) 아트부산 대표가 그렇다. 그가 2020년부터 대표직을 맡아 이끌어온 국제아트페어 ‘아트부산’은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대 아트페어로 성장했다. 20년 전통의 키아프와 올해 40주년을 맞은 화랑미술제는 한국화랑협회라는 전국 규모의 초대형 조직이 주최하는 것과 달리 아트부산은 설립자 손영희 이사장이 2012년 맨손으로 시작한 순수 민간 아트페어다. 그것도 아트마켓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을 텃밭으로 삼았다. ‘양보다 질’로 승부수를 던진 아트부산은 변 대표를 영입한 후 해외 주요 갤러리의 신규 참여가 급증했고 단숨에 강력한 양강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CEO스토리] 변원경 아트부산 대표./권욱 기자


독일 유학으로 2003년부터 그의 생활 거점이 된 베를린은 파리·뉴욕·런던을 거쳐온 ‘현대미술의 심장’이 뜨겁게 뛰는 곳이었다. 이따금 유학하던 작가들을 위해 평론을 써주곤 하던 그에게 국내 굴지의 갤러리가 베를린 지점을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전시 기획을 도우며 작가나 갤러리를 현지 미술관과 연결하던 그에 대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던 때다. 글로벌 미술 시장이 한창 호황이기도 했다. 한국 갤러리들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확산된 뉴욕발 금융위기로 계획이 무산됐다.

“뜻하지 않게(accidentally) 갤러리를 시작했어요.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가 그러더군요. 미술 작품에 말을 걸고 작품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라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만약 아무 얘기도 못 듣는다면 그건 그 작품과의 감정선(emotional contact)이 닿지 않은 것입니다. 철학이 어떻게 아트비즈니스로 이어졌는지 물으신다면 작품이 소곤거리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철학 공부만 하던 사람이 미술 사업을 꾸리는 방법은 그야말로 ‘원론적’이었고 ‘학구적’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변 대표는 “갤러리는 전시만 잘하고 좋은 글을 써 컨텍스트(맥락)를 만들어 보일 수만 있다면 성공하는 것이라 믿었다”면서 “당시 전속 화랑이 없던 한국 중견 작가를 독일로 초청해 전시 비용만 1억원 넘게 쓴 적도 있고,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노르웨이 신인작가의 사운드아트에 공을 들이기도 했으니 매출은 저조한 채 미술관들로부터 ‘전시 좀 도와달라’는 요청만 이어졌다”고 말했다.

[CEO스토리] 변원경 아트부산 대표./권욱 기자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스위스 아트바젤, 독일 아트쾰른, 프랑스 피악 등을 누볐다. 아트바젤이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해 ‘아트바젤홍콩’으로 새단장하게 한 주역 매그너스 랜프루가 변 대표를 초청했다. “진지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그에게 특별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작가와 갤러리들의 호평이 변 대표에게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게 했다. 한국 떠난 지 10년 만인 2013년에 키아프에도 참가했다.

“그 무렵 새로 생긴 아트부산이 참가 의뢰를 했는데 사양했습니다. 미안하던 차에 대신 ‘국제아트페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주제로 워크숍을 해달라고 해서 흔쾌히 진행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2014년부터 갤러리로서 아트부산에 참가하게 됐죠.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임에도 부산에는 갤러리도 적고 미술관도 빈약한 실정이었는데 실제 방문해서 보니 좋은 눈을 가진 컬렉터들이 많은데 기회가 없었다 싶었어요. 2016년부터 어드바이저로서 해외의 어떤 갤러리를 초대하고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를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전시장에 세우는 가벽과 조명 등 세부 조건이 행사의 품격을 바꿔놓는다는 것이었다. 작품 전시용 가벽을 360㎝로 높였고 벽만 비추던 조명을 트러스(철제 구조물)를 이용해 조각이나 설치 작품도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게 했다. 손 이사장이 그를 대표이사로 전격 영입한 후로는 ‘머스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해외 최정상 아트페어를 벤치마킹한 ‘샘플 부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간밤에도 조명 6종을 가져다 흰 벽에 비춰보고 사진도 찍어보며 시험해봤습니다. 나무 바닥, 카펫, 벽 페인트 같은 것들이 뭘 크게 바꿔놓겠냐 싶겠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달라집니다. 작은 차이가 큰 격차를 이룹니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10년 전 아트페어에서는 수천만 원짜리 작품을 팔았지만 지금은 수억·수십억 원대 작품을 거래하는 곳이 됐습니다. 닷새 매출이 600억 원을 넘길 정도니까요. 예전에는 큰손 컬렉터들이 국내 아트페어에서 마주치면 ‘여기까지 왔냐’는 식으로 서로 창피해했다던데 지금은 ‘당신도 왔소’라며 반가워합니다. 이미 해외 아트페어, 외국 미술관 기행을 수없이 경험한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어야 아트페어가 진화합니다.”





미술 문화의 수준은 그 나라의 품격을 결정짓는다. 품(品)은 사고팔기도 한다지만, 격(格)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류로 K팝·K드라마·K시네마·K클래식 등이 맹위를 떨치는데 유독 ‘K아트’만 보이지 않는다고 묻는다면 이는 미술이 그 정도로 ‘쉽지 않은 예술’이기 때문이며 높은 취향부터 넓은 저변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미술 시장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지목된다. 해외 대형 갤러리들이 연달아 서울 분점을 열고 9월에는 세계 최정상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이 키아프와 같은 기간에 열린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역 시장이 개방되듯 한국 미술계가 세계를 향해 활짝 열리는 셈이다.

“지난해 아트바젤에서 ‘아트부산 디너’를 진행했는데 당시 모인 유수의 화랑 운영자들이 ‘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며 궁금해했습니다. 한국의 구매력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우선 올해는 우리 내수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외국 ‘큰손’이 한국을 찾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하이에서 한국까지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부산과 서울은 아시아의 주요 컬렉터들을 모으기에 매력적인 도시죠. 올해 일시적으로 외국 작품 수요가 급증할 수 있지만 일종의 선급금이고 학습 비용입니다. 이를 계기로 찾아온 갤러리들에게 우리 작가들을 소개한다면 궁극에는 더 큰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 화랑들도 한국 작가를 발굴해 한국 미술계에 기여하고 싶어합니다.”



성장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변 대표는 “홍콩아트페어에 처음 참여한 2010년 무렵 그곳에는 미술관도 없었고 외국 화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아트바젤홍콩의 성공으로 3년 새 70개의 글로벌 화랑들이 분점을 열었다. 아트페어 하나가 홍콩을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로 만들어놓은 셈”이라고 강조했다. “‘프리즈 서울’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30~40곳의 외국계 화랑이 추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지역 기반이 부산이라는 것도 그는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판단했다. 도심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는 일상을 쪼개 전시장을 찾게 하지만 ‘아트부산’만큼은 오롯이 이것만을 위해 짐을 꾸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관객의 평균 체류 시간이 4~5시간이고 재방문율이 높은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업계에서는 아트부산이 미국의 대표적 휴양도시 마이애미비치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벤치마킹했다고 보고 있지만 변 대표의 계획은 그 이상이다.

“바다를 낀 아름다운 도시에서 열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가 개최되는 기간 그곳에서는 20여개의 위성 아트페어가 열립니다. 부산도 ‘아트부산’이 개최되는 시기에 ‘아트부산 위크’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팝아트·스트리트아트·NFT아트 등 다양한 성격의 아트페어가 가능하겠죠. 작품에 따라 타깃 관람층과 연령층이 달라지니까요. 아트부산의 새로운 버전 격인 아트페어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산 앞바다의 바닷물이 마르지만 않는다면, 해변에 즐비한 호텔들이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 예술로 들썩이는 부산은 결코 먼 미래가 아닐 겁니다.”

▶He is…

△1972년 서울 △마포고 △연세대 철학과 △연세대 대학원 독일예술철학 석사 △독일 국립에센대 예술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8년 벨기에 국립현대미술관 배병우 사진전, 이영재 도자전 기획 △2008년 기획출판물 ‘세이크리드우드(Sacred Wood, 핫제칸츠 펴냄)’ 포토북어워드 은상 수상 △2009년 독일 베를린 안도파인아트갤러리 개관 △2011년 스페인 그라나다 주립 알함브라미술관 ‘소울가든’전 기획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이스라엘관 아야벤론 전시 커미션 △2019년 기획출판물 남춘모 화집(하르트만프로젝트 펴냄) 독일 북디자인어워드 수상 △2020년~ 아트부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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