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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ㅎ으로 '홀려라'

'안상수체' 유명한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

서울시립미술관 등 미술관 전시 위주 활동

2017년 이후 한글 문자도 '홀려라' 연작

생애 첫 갤러리 전시 OKNP, 6월 9일까지

안상수 '홀려라' 90.9×72.7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복합매체, 2024년 /사진제공=OKNP




하하 웃고 흑흑 운다. ‘헉’하고 놀라키고 ‘헐’하며 맥 빠진다. 흘렸다가 훔치는가 하면, 흘겼다가 홀리기도 한다. 혼(魂)도 있고 흥(興)도 있고 한(恨)도 있으니 ‘ㅎ’ 하나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가지고 논다.

“우리 글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형태가 ‘ㅎ’이에요. 웃음부터 울음까지 ‘ㅎ’이 연상시키는 것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하나’ ‘한국’ ‘흙’처럼 가장 한국적인 문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그런가하면 행복과 해피(happy), 하늘과 헤븐(heaven)은 어찌하여 ‘ㅎ’으로 통하는 걸까요?”

안상수 '한글 도깨비' 116.8×91cm, 캔버스에 아크릴과 혼합매체, 2024년 /사진제공=OKNP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가 한글에 민화적 요소를 더한 문자도 화풍으로 2017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홀려라’ 연작이다. 자음 ‘ㅎ’으로 시작하나, 읽을 수가 없으니 분명 글자 아닌 그림이다. ㅎ은 마치 모자 쓴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는 한자의 획에 붙고, 추상적인 선에도 결합하며 요리조리 변신한다. 춤꾼이 되었다가 나비나 새처럼 날아오르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보이는가 하면 외계어 같기도 하고 세련된 패턴으로 보이기도 한다. 활자를 작품에 활용하는 현대미술가로 바바라 크루거나 제니 홀저 등 유명한 이들이 있으나 그들의 글자는 직설 어법의 수단이며, 메시지와 의미를 전하는 데 주력한다. 반면 “한글은 참으로 선적(禪的)이다”라고 말하는 안상수 식 문자도는 의미를 강요하지 않으나 결코 무의미한 붓질도 아니다. 읽히지 않는 대신 해석과 감각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업이라 추상회화를 마주하는 듯 설렌다.

부산 소재 갤러리 OKNP에서 전시 중인 안상수 '홀려라' 연작 /사진제공=OKNP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다. 그는 네모 반듯하게 써야 예쁘다던 한글을 틀 밖으로 끄집어 냈다. 1985년 발표하고, 1991년 한글프로그램에 폰트로 개발한 ‘안상수체’는 사람 이름이 붙은 첫 서체가 됐다. 삐죽삐죽 들쑥날쑥한 ‘안상수체’는 초성, 중성, 종성이 모두 같은 크기인 평등의 서체다. 직선과 동그라미로만 이뤄져 한글 창제의 원리와 원형에 가장 충실했던 글씨체가 가장 혁신적인 서체로 탄생했다.

“한글은 우리 문화의 핵심이건만, 정작 우리 땅의 미술에서는 늘 한글이 소외됐습니다. 그게 안타까웠어요. 우리 것에 대한 편견으로 홀대한 거죠. 다른 곳에서 혹은 밖에서 어떻게 인정받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되지요.”



한국의 1세대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이자 예술가로서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을 비롯한 해외 미술관 전시를 지속해 온 안상수가 OKNP 부산에서 생애 첫 갤러리개인전 '홀려라'를 6월9일까지 개최한다. /사진제공=OKNP


195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안상수는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학보사 기자를 거쳐 편집장을 맡았다. 거꾸로 된 인쇄 활자를 접하며 글씨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때부터 문자에 대한 조형적 실험을 시작했다. 한양대 박사학위 논문인 ‘타이포그라피적 관점에서 본 이상 시(詩)에 대한 연구’에서는 띄어쓰기를 생략한 시에서 드러나는 질주와 불안·공포의 느낌을 분석했고, 글이 아닌 활자의 배치가 이뤄내는 시각적 형태와 효과에 대한 예리한 고민을 드러냈다. 1988년부터는 동료작가 금누리와 함께 “한국 최초의 아티스트북”으로 소개되는 ‘보고서/보고서’(총 17호)를 발간하며 한글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험을 다 해봤다.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홍콩 M+뮤지엄 등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1985년 발표한 후 1991년 한글프로그램을 위한 폰트로 개발된 ‘안상수체’는 사람 이름이 붙은 첫 서체다. 소위 ‘홍대 앞 문화’라 불리는 서브컬처의 확산을 비롯해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오른 1990년대 새로운 한국 문화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고, 2001년 최초의 타이포비엔날레로 기획된 ‘타이포잔치’의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며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효리, 황희찬 등의 타투로 유명한 안상수의 '생명평화무늬'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식물과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는 세상을 상징한다. /사진제공OKNP


한국 추상미술과 ‘단색화’의 시작지점에 김환기가 있다면, 한국 디자인 전시의 첫 문은 안상수가 열었다.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로댕갤러리가 개관 이래 처음으로 디자이너 개인전 ‘한.글.상.상.’(2002)을 열어 그의 업적을 되짚었다. 아모레퍼시픽의 의뢰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한 ‘아리따체’를, 신세계백화점의 문화적 유산과 정신성을 드러낸 ‘신세계체’를 개발했다. 해와 달을 양쪽에 놓고 사람과 동·식물이 두루 어우러지는 생명평화무늬’를 디자인했고, 이는 이효리·황희찬의 타투 문양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7년에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가인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딴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원로작가를 집중 연구하는 특별전의 주인공으로 안상수를 선정해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후로 타이페이 쉐쉐미술관을 비롯해 미술관과 비엔날레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가 생애 첫 갤러리 개인전을 부산 OKNP에서 열었다. 6월 9일까지인 이번 전시에는 그의 문자도 대표작들이 두루 선보였고, 상상 속 외계인 문자체계를 개발해 힌두교 생명의 여신 ‘샤크티’라는 글자를 표현한 신작을 함께 공개해 앞으로의 작업 방향까지 예고하고 있다.

안상수 ‘샥티(shakti)’dkst,145.5×112.1cm, 캔버스에 아크릴과 복합매체, 2024년 /사진제공=OK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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