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스닥 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천스닥’ 시대를 열었다. 2000년 이후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50배 증가했고 400개를 밑돌았던 상장기업도 1500개 사를 넘어서면서 일평균 거래 대금은 50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천스닥 안착까지는 갈길이 멀다. 실은 코스닥 지수는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급락하며 2004년 지수의 기준을 10배 늘린 바 있다. 이에 1996년 개장 기준1000포인트를 아직 확실하게 수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든 보수든 어떤 색깔을 가진 정부든지 새로 출범할 때마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으나 실패하고 있다는 점은 코스닥 지수만 봐도 알 수 있다. 86%에 달하는 개인의 높은 거래 비중은 코스닥의 ‘약한 고리’다. 금융투자 업계는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기관투자가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코스닥 디스카운트(저평가)’라는 해묵은 꼬리표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고민이 큰 요즘 장경호 코스닥협회 회장을 만났다. 벤처 1세대로 코스닥의 부침과 도약을 몸소 겪어온 장 회장에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당면한 과제와 나아갈 길을 물었다. 대담=이혜진 증권부장
“코스닥 시장 면면을 들여다보면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전통 제조업에서 벗어나 바이오, 2차전지 소재, 메타버스, 플랫폼,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혁신 산업의 요람으로서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디스카운트라는 숙제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어요. 2부 시장으로서 신뢰성 확보를 위해 도입했던 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냈었지만 대부분 구호에 그치면서 많은 노력들이 희석됐습니다.”
장 회장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발표된 코스닥 활성화 방안들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확실한 레벨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정부는 혁신 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요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 확대를 유도한다고 발표했다. 벤치마크 지수를 변경하고 기금 운용 평가 지침을 개선한다는 세부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모두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코스닥 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15% 이내에 머물고 있고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은 3%에 불과한 상황이다. 장 회장은 “투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국인 및 기관투자가를 유치하기 위한 시장 활성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장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코스피200 이외에도 KRX300, 코스닥150 등 다양한 지수 활용, 연기금 운용 방침에 코스닥 투자 의무 비중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 투자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코스닥 상장사들은 현행 상법과 법령에서 코스피의 대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받으며 역차별적인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장 회장은 “코스닥 상장사의 97%가 중소·중견 기업임에도 대기업과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어 시장의 활성화를 저해한다”며 그 대표적인 예로 2018년부터 시행된 신(新)외부감사법(신외감법)을 꼽았다. 감사인 지정 제도, 표준 감사 시간 도입, 내부회계관리 제도 감사 등 규제 비용에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들의 신외감법 관련 비용은 2018년보다 66%나 늘었다. 그는 “규모가 큰 코스피 기업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상당수의 중소기업에는 몇 억 원도 성장을 위해 쓸 수 있는 ‘피같이’ 소중한 자금”이라며 “신외감법 시행으로 억대의 부담을 새로 져야하는 작은 규모의 코스닥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미국의 경우에도 중소 규모 기업은 비용 부담이 과도해 경쟁력을 약화시켜 성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시가총액 7500만 달러(약 830억 원) 미만 중소기업은 감사를 면제하고 있다. 장 회장은 “기관투자가들의 장기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제약을 걷어내야 한다”며 “자산 총액 1000억 원 미만 중소기업의 내부회계관리 제도 감사 면제 등 보완 입법을 계속해서 건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인센티브가 적다고 생각한 기업들이 코스피 시장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반복된 점도 기관투자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코스닥이 벤치마킹한 미국 나스닥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테슬라와 애플·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핵심 기업 성장과 함께 나스닥 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네이버·카카오·셀트리온 등은 코스닥을 코스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만 활용했다. 코스닥 시장에만 있는 공시 항목과 투자 주의 환기 종목 제도 등 시장 규제가 성장 동력을 훼손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코스닥 시장에서 출발해서 성장한 스타 기업을 잡아놓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 회장은 코스닥 우량 혁신 기업을 선별해 관리하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 제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업 규모별, 성장 단계별 맞춤형 관리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코스피와의 규제 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세그먼트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돼 장기적·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코스닥 포트폴리오로서 역할한다면 중장기 투자 성향 기관투자가들의 새로운 유동성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에코프로비엠 등에서 발생한 횡령·배임, 내부자 거래 등이 코스닥 시장 전체의 신뢰도 훼손은 물론 기업가치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내부 통제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짚었다. 장 회장은 “대표이사 및 경영진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 세미나를 개설하고 임직원들을 위한 교육도 강화할 것”이라며 “올 3월 내부 통제를 주제로 코스닥 최고경영자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코스닥협회는 올 하반기에 ‘내부회계관리제도 업무 체크리스트’와 ‘횡령 방지 매뉴얼’도 마련해 안내할 예정이다.
코스닥 1세대 CEO들의 매끄러운 경영권 승계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장 회장이 힘을 싣고 있는 문제다. 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1년 코스닥기업 CEO 평균 연령은 약 57세로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가업 승계에 대한 관심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할증 포함 최대 60%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과 까다로운 가업 승계 공제 요건으로 가업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제 1987년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2019년 88에 그쳤고 같은 기간 가업상속공제 건당 금액은 27억 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장 회장은 “높은 상속·증여세율로 많은 기업이 흑자 상황임에도 폐업을 결정하고 사모펀드에 회사 매각을 의뢰하거나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는 등 기업 영속성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일·일본 등 다수의 해외 국가들은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투자 활동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인식 아래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특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근로자 수 유지 조건, 피상속인 지분율 완화와 함께 공제 한도액 상향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회장은 앞으로의 임기 동안 ESG 경영을 코스닥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도 주력할 계획이다. ESG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부상함에 따라 코스닥 중소·중견 기업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게 ESG 경영에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다수의 기업이 ‘ESG에 대한 가이드라인 부재’와 ‘비용 부담 증가’로 ESG 경영 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이에 협회에서 한국거래소·상장협 등 유관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설명회 및 교육 관련 책자를 발간해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올해는 코스닥 기업에 코스닥 ESG 자가 진단 가이드를 제공하고 5월에는 한국거래소와 공동으로 ESG 전문 연수를 실시하는 등 기업들의 자발적인 ESG 경영 참여를 독려하며 ESG 경영 인프라 구축에 힘쓸 것”이라며 “ESG 경영 참여 기업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대정부 의견 개진, 중소기업 ESG 경영 지원책 마련 등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확대 또한 지속 건의할 방침이다. 장 회장은 “코로나19 뉴노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 등 대내외의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R&D 세액공제 확대, 해외 특허 출원 비용 세액공제, 결손금 소급 공제 환급 기간 확대 등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는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이어 “중소 상장사의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스톡옵션에 대한 비과세 특례,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사업손실준비금 제도 등 관련 정책을 신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리=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 사진=권욱 기자
◇He is...
△1958년 충남 공주 △공주고 △공주사범대 화학교육과 △KAIST 화학과 석사·신소재공학과 박사 △1989년 새한 기술연구소 연구원 △2001년 이녹스 대표이사 △2004년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 이사 △2012년 코스닥협회 이사 △2016년 한국공업화학회 회장 △2017년 이녹스첨단소재 대표이사 회장 △2019년 코스닥협회 수석부회장 △2021년~ 코스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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