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 두 시간도 서러운데 시위까지 겹쳤네요. 100% 지각입니다”
“나는 어쩌다 한 번 겪는 불편인데 저들은 매일 겪는 불편이라 생각하니 불평도 못하겠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면서 출근길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약 45분간 지연되는 등 ‘출근길 대란’이 발생했다. 전장연은 21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이동권 대책이 미흡하다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지난달 30일 장애인 권리 예산 등에 대한 인수위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며 시위를 잠정 중단한 지 22일 만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위가 끝내 공식적으로 답변을 주지 않았다"며 "인수위 브리핑은 그 이전에 20년간 양당 정권이 집권했을 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박 대표는 "이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5월 2일 인사청문회에서 답해야 한다"며 "만약 추경호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장애인 권리예산에 대한 입장 발표를 한다고 약속한다면 그 약속을 믿고 입장 발표의 날까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멈추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 약속도 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답변을 받을 때까지 지속해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매일 경복궁역에서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매일 삭발투쟁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전 8시께 3호선 지하철에 올라탄 뒤 휠체어에서 내려 열차 바닥을 기는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그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 보장하라' 등이 적힌 피켓 스티커를 바닥에 붙여가며 힘겹게 양팔로 몸을 끌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등 다른 활동가들도 휠체어에서 내려 오체투지에 동참했다. 같은 시간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도 전장연 활동가들이 휠체어에서 내린 뒤 줄지어 열차 바닥에 엎드려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같은 시위로 인해 경복궁역에는 상·하행선 열차가 수십분간 역을 떠나지 못했다. 출근길 열차 안의 시민들은 곳곳에서 "그만해라", "몇 시간째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경복궁역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종훈(16)군은 "등교 시간이 8시까지인데 경복궁역에 도착하니 8시 45분이었다"며 "뒷줄 차에 탄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열차에 있던 한 남성은 지각을 직감한 듯 휴대전화를 들어 상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중 "팀장님도 여기 계신다고요"라고 말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호선 시청역에서도 활동가들이 을지로입구역 방향 내선순환 열차 탑승구에 휠체어를 멈춰 세우고 발언을 이어가면서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경찰은 전장연 활동가들을 향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며 3차례에 걸쳐 해산명령을 내렸지만, 활동가들은 "옥내집회는 집시법 대상이 아니다", "당신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하고 있다"고 맞섰다.
지하철 운행은 전장연이 경복궁역 대합실에서 삭발식을 준비하기 시작한 오전 8시 50분께부터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이 연대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일부 시민은 이들에게 침을 뱉거나 "대한민국에서 나가라", "너희가 무슨 장애인단체냐"며 삭발식 내내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오전 7시 40분께부터 지하철 2·3호선 양방향 열차 운행이 지연됐으나 3호선 운행은 8시 50분께, 2호선 운행은 9시 28분께 정상화됐다"며 "다만 배차간격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는 오전 10시부터 통의동 인수위 인근인 고궁박물관 남측 인도로 이동해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마무리 보고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