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독일은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즉각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정사(正史)는 아돌프 히틀러를 2차 대전을 일으킨 주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수정주의 학자 AJP 테일러는 1961년 ‘2차 세계대전의 기원’에서 2차 대전의 발발은 히틀러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1차 대전 이후 승전국이 패전국 독일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베르사유조약은 독일에 과도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고, 독일은 40년 이상 지배해온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랑스에 양도하는 등 상당한 영토 손실도 감수해야 했다. 독일의 경제는 피폐해졌고 게르만 민족의 자존심은 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는 어느 독일의 지도자라도 했을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한복판에 있는 독일은 완충지대가 필요했고 이러한 안보 우려는 주변국을 복속하는 ‘생존권(Lebensraum)’ 구축 정책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한 히틀러의 결정은 이러한 생존권 구축의 일환이었고, 만약 폴란드가 독일계가 많이 살고 있던 ‘단치히(Danzig)’만 독일에 양보했다면 2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동·남·북 국경을 동시에 침공하는 전면전을 감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대대적인 군사·경제적 지원에 러시아가 핵전쟁까지 위협하자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무도한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세력권’을 침해해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무너뜨린 미국의 나토 확장 정책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해외에서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와 같은 신(新)현실주의 학파가 이러한 주장을 한다. ‘힘의 균형’과 같은 물리적 요인을 가장 중요시하는 현실주의 학파의 분석에 자유와 민주와 같은 이념적 요인이 결여돼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자유와 민주를 위해 투쟁했다는 86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이 전쟁의 원인을 미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지목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의 분석에는 ‘음모론’이 빠지지 않는다. 미국이 방산 업체의 이익을 위해 무기를 지원하고 있고, 러시아를 대체해 대유럽 천연가스 수출국이 되기 위해 에너지 제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 언론이 전황을 왜곡 보도하고 있다는 분석은 러시아 정부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토의 동진 정책은 분명히 무리하게 추진된 부분이 있고 불필요하게 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 잘못된 정책이었다. 하지만 나토의 확장이 이 전쟁의 원인인가. 나토의 확장이 이 전쟁의 원인이라면 블라디미르 푸틴 말고 다른 누가 러시아의 대통령이었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발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입증돼야 한다. 나토의 확장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1차 대전 이후 승전국의 정책이 2차 대전의 원인이었다는 억지 주장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민주주의 열망은 2004년 오렌지혁명으로 분출됐고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이후 더 증폭됐다. 푸틴은 안정된 자유민주주의 국가 우크라이나를 접경국으로 둘 수 없다는 것이고, 우크라이나 국민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하자 16개국은 전투병을 파병했고 이 중 4만여 명이 전사했다. 국제사회의 희생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그런 한국이 전쟁의 불똥이 한반도에 튈까만 걱정하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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