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 위기 징후가 나타난 2007년 말. 세계 최대 금융사 씨티그룹은 1967년생 젊은 여성에게 글로벌 전략과 인수합병(M&A) 총괄 자리를 맡겼다. 구조 조정 책무를 맡은 그는 씨티그룹의 일본 증권 사업을 80억 달러에 파는 데 성공했다. 씨티가 2008년 금융위기 터널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 자금은 결정적 힘이 됐다. 씨티의 ‘구원투수’ 역할을 한 주인공은 훗날 월가 대형 은행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인 프레이저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태어난 프레이저는 의사가 되려다 생물학에 자신이 없고 수학과 경제학을 좋아해 진로를 바꿨다.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이수했다. 골드만삭스의 M&A 전문가로 일한 그는 맥킨지를 거쳐 2004년 투자·기업뱅킹 부문 고객전략책임자로 씨티에 합류했다. 이후 M&A 총괄을 맡아 18개월 동안 25건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어 연간 2억 5000만 달러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였던 프라이빗뱅크 책임자를 맡아 흑자로 돌렸다. 2013년에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난파 위기에 몰린 모기지사업부를 회생시켰다. 2015년에는 부실 투성이였던 라틴아메리카사업부를 지휘하며 현지 소매 은행과 신용카드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구조 조정에 성공했다. 2019년 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글로벌소비자금융 부문 대표를 맡은 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씨티그룹 CEO에 등극했다. 뉴욕타임스는 “월가의 수많은 변화에도 최고 수장은 항상 남성에게 돌아갔는데 마지막 요새가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레이저가 최근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한 세대 만의 최고 수준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동반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이 인플레이션 장기화와 부실 쓰나미를 경고하는데 우리 은행들은 대출 경쟁에 나서고 증권사는 대출 이벤트까지 하며 ‘빚투’를 조장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0.5%포인트 올리며 ‘빅스텝’에 시동을 건 만큼 우리 금융사도 건전성 고삐를 죄고 더 강한 안전판을 구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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