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블에 올라간 적조차 없었는데도 제롬 파월 의장이 이를 적극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시장이 안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파월의 메시지는 오히려 0.5%포인트씩 연준이 금리 인상에 전력 질주를 하겠다는 뜻이다.” (로버트 암스트롱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전 세계 시장이 연준이 밝힌 ‘빅스텝’의 의미를 깨닫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전날 0.75%포인트의 ‘자이언트스텝’을 밟지 않았다는 데 안도했던 시장이 긴축의 공포에 눈을 뜨면서 금융시장에 비관론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5일(현지 시간) 미국 주식시장은 물론 국채시장·외환시장이 일제히 출렁였고 뒤이어 열린 아시아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도 일제히 급락했다. BNP파리바의 미국 주식·파생상품 전략 책임자 그레그 보틀은 전날의 주가 상승에 대해 “약세장 속 단기 반등(베어마켓 랠리)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큰 타격을 받은 것은 금리 상승에 취약한 기술주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연준의 빅스텝에 기술주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지난 수년간 세계 증시의 버팀목이었던 기술주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기술주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증시의 상승을 견인했다. 팬데믹으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실적이 좋아진 e커머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테크 기업들로 전 세계 자금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무려 73.1% 상승해 다우존스평균지수 상승률(26.08%)을 훌쩍 뛰어넘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미국의 기술 경쟁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나스닥을 견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연준의 긴축 행보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나스닥지수는 올해 들어 22.2% 하락했다. 미국 테크·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같은 기간 33.8% 떨어졌다. 미 증시가 급락한 5일 가장 큰 낙폭을 보인 종목들도 소프트웨어 기업을 포함한 이른바 성장주였다. 이날 아마존이 7.6% 폭락한 것을 비롯해 테슬라가 8.3%, 애플이 5.6%의 낙폭을 보이며 시장 평균 하락 폭을 웃돌았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홀딩스(-9.69%)와 지스케일러(-8.86%), 도큐사인(-8.56%) 등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10% 가까이 주저앉았다.
시장에서는 기술주의 부진이 이제 시작이라는 암울한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예정된 연준의 금리 인상 스케줄을 고려하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정이 하루짜리 후폭풍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주식 가격은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을 현재의 기업가치로 환산해 반영하는데 미래의 성장성에 많은 비중을 두는 기술주는 특히 금리 인상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대니얼 모건 시노버스트러스트 선임매니저는 “상당수의 테크주는 현시점의 영업이익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주가의 바닥을 찾기도 어렵다”며 “주당순이익(PER)이 10배 정도는 돼야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권을 이용한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 혁신을 위한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은 기술주의 장기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특수가 마무리되는 점도 기술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1분기에 유료 구독자가 20만 명 줄었다. 11년 만의 가입자 감소다. 2분기에는 200만 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역시 광고 수익 하락이 가시화되고 있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은 빅테크 외에도 중소 규모의 기술 기업인 경우 금융권을 통한 조달이 어려워지는 동시에 영업을 통한 현금 확보도 힘들어질 수 있다. 로버트 캔트웰 업홀딩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테크 기업은 실적 부진 이상의 상황에 처해 있다”며 “가치 재평가를 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랜디 프레더릭 찰스슈와브 부사장도 “테크주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테크주의 부활이 사실상 미국의 인플레이션 완화 여부에 달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칼 시버트 윌리엄스생크앤코 수석트레이더는 “인플레이션이 개선되지 않는 한 모든 시장 행보는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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