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의 밀 생산국 인도가 자국 내 공급 부족을 이유로 밀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유럽의 주요 밀 생산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길이 막혀 생긴 공급 공백을 인도산 밀이 메꿔온 만큼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앞서 인도네시아가 식용유인 팜유 수출을 막은 데 이어 인도까지 밀 공급을 끊고 나서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식량 무기화’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식량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14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대외무역총국은 13일 밤부터 밀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밀 수출 금지는 없을 것’이라던 데서 돌연 입장을 바꿔 기습 조치를 발표한 인도 정부는 “국제 밀 가격 상승으로 인도와 이웃 국가, 기타 빈국의 식량안보가 위기에 처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13일 이전에 취소 불능 신용장(ICLC)이 개설됐거나 인도 중앙정부가 다른 나라 정부의 요청 등에 따라 허가한 경우는 밀 수출을 허가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인도 정부의 발표대로 현지의 밀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인도 정부는 3월에 45도를 웃도는 폭염이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곡창지대를 덮친 탓에 인도의 밀 생산량이 전년 대비 5%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인 밀 가격이 오르자 인플레이션도 심해졌다. 4월 인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7.8%를 기록해 1년 전(4.32%) 수치를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도의 조치에 세계 곡물 시장은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유럽의 빵 공장’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전쟁으로 막히면서 대체 공급처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21~2022 회계연도(지난해 4월~올 3월) 동안 인도의 밀 수출량은 700만 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2~2023 회계연도의 목표 수출량은 1000만 톤에 달한다. 이만큼의 물량이 하루아침에 뚝 끊기게 될 경우 글로벌 시장은 심각한 밀 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 곡물 트레이더인 스위던 스틸은 “(곡물 시장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시장 분석 업체 토머스엘더마켓의 앤드루 화이트로 애널리스트도 “세계 밀 시장이 절대적인 공급 부족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른 지역의 밀 생산량도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미 농무부는 2022~2023년 세계 밀 생산량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면서 밀 재고가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프랑스 등 다른 주요 생산국도 가뭄으로 밀 작황이 급격히 악화한 탓이다.
13일 국제 밀 선물 가격은 부셸당 12달러에 근접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후인 3월 고점(12.94달러)에 근접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인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젬 외즈데미르 독일 농업장관은 이날 주요 7개국(G7) 농업장관 회의를 마친 후 “다른 나라들이 인도를 따라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며 “인도는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으로서 책임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산 밀 의존도가 높은 이집트는 수입이 끊기지 않도록 인도 정부에 ‘수출 예외를 인정해달라’며 긴급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지난달 팜유 수출을 갑자기 막은 데 이어 인도까지 밀 공급을 중단하는 등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데 대해 국제사회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G7 회의 후 “러시아가 벌인 끔찍한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다”면서 “러시아 탓에 우크라이나에 묶인 곡물이 2500만 톤이나 된다. 각국은 이 물량이 절실하다”며 식량 위기 해소를 위한 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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