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미국과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 수출은 허용하되 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자금으로 쓰이는 러시아의 원유 판매 수익을 감소시키되 러시아의 원유 수출은 허용함으로써 에너지 공급난으로 급등하는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복안이다.
9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G7 회원국 및 유럽 동맹국들과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최근 “(상한제 도입의) 궁극적인 목표는 러시아의 원유 판매 수입을 제한하는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러시아산 원유가 그대로 시장에 유입되도록 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억제를 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더 많은 나라가 (서방의 조치에) 동참할 수 있도록 원유 수입국 간 ‘카르텔’을 형성해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라고도 말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러시아가 서방이 설정한 상한 이상으로 가격을 매겨 원유를 수출할 경우 해당 물량을 실어 나르는 유조선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WSJ는 “(러시아 원유 운송 시) 영국이나 유럽 보험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 같은 조치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은 당초 러시아산 원유를 선적한 배가 유럽 보험사에 아예 가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이 경우 러시아산 원유 수출 급감으로 글로벌 원유 시장이 ‘공급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절충안을 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중국과 인도 등 러시아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탓에 러시아 측에 충분한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는 점도 서방이 상한제 도입으로 눈을 돌리게 된 요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안보특사는 이날 의회에서 “러시아가 원유 판매로 전쟁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원자재 정보 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세계 3위의 원유 수입국인 인도는 5월 러시아산 석유를 하루 평균 84만 배럴씩 구매하면서 4월보다 2배 이상 수입을 늘렸고 6월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도 올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3배가량 많은 1450만 배럴 규모의 러시아 원유를 사들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한 행사에서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수년간 스스로 끊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