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교육·연금 개혁과 함께 노동 개혁을 3대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노동 유연성 확보를 필두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노동계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이 같은 기대가 결국 기대에 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집권 초기 노동계의 공세에 맞선 정부의 대응이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경영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계의 눈치를 보느라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윤석열 정부 첫 노정 시험대로 불렸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전면 파업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이다. 화물연대의 전면 파업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 속에 무려 8일 동안 이어졌다. 화물연대의 전면 파업으로 전국의 물류 운송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정부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라는 화물연대의 요구에 협상 초기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론을 고수했다. 경찰 등 공권력도 불법행위를 한 화물연대 조합원을 일부 구속하는 등 “불법행위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원칙을 밀어붙이는 듯했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으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경영계가 불편을 호소하자 결국 협상으로 급선회했다. 협상은 일몰제 연장 및 추가 운임 지원 등 화물연대의 요구가 대부분 반영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화물연대 전면 파업이 남긴 생채기는 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전면 파업 기간(6월 7~14일) 중 산업계 피해 규모는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철강재는 약 45만 톤, 6975억 원(톤당 155만 원)의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 완성차는 5400대의 생산 손실을 입었다. 1대당 4759만 원 기준 총 2571억 원에 이른다. 석유화학 업계는 5000억 원, 타이어 업계는 570억 원 수준의 출하 차질을 빚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의 초기 대응과 협상이 원활했다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복합 위기가 다가오는 미증유의 상황에서 경영계가 요구하는 업종별 차등화는 고사하고 상승률도 올해 수준인 5%로 결정됐다. 우선 최저임금 노사 논의 과정에서의 아쉬움이 크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가 동시에 몰려오는 복합 위기에서 임금 지급자들의 지급 능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특히 지난 5년간 최저임금 급등으로 폐업 위기에 몰려 있는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노사 합의가 무산될 경우 공익위원 등이 포함된 최저임금위원회 표결로 결정한다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한계도 이번에 그대로 드러났다. 경영계가 최저임금위원들이 공익위원안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한 상황에서 노동계 일부와 공익위원이 남아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52시간제 개선안과 호봉제 폐지 등 노동 개혁안도 윤 대통령이 확정된 바 없다고 바로 선을 그으면서 국민들을 혼선에 빠트렸다. 노동 개혁은 집권 초기 강력한 의지로 깃발을 들었던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했던 난제 중의 난제다. 사회적 합의 등 지난한 과정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정책보다 신중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부의 교통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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