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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잃어버린 20년’의 망령

오현환 논설위원

대내외 리스크 봉착한 한국 경제

규제·노동개혁 어느 때보다 절실

일본의 실패 답습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구국 심정'으로 나서야





1985년 9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일본 등이 일본 엔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엔화 급등으로 일본 수출 기업들이 아우성치자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내렸다. 그러자 1만 2700선에 머물던 닛케이225지수가 1989년 12월 무려 세 배가 넘는 3만 8000까지 치솟았다.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급등했다. ‘일본을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이 나왔다. 소니는 할리우드 영화사 컬럼비아픽처스를, 일본 재벌 요코이 히데키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사들였다.

더 이상 거품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989년 말 2.5%에서 1990년 3월 5.25%까지 급격히 올렸다. 그러자 버블이 한순간에 터졌다. 닛케이지수가 2년 반 만에 1만 4000 언저리까지 주저앉으며 반 토막이 났다. 뒤이어 부동산 가격도 폭락해 10년 새 평균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199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도 감소세로 돌아서며 경제를 압박했다. 소비 위축으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0년간 0~2% 선에서 맴돌았다. 2010년에는 ‘제2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도 중국에 빼앗겼다. 자산 거품 붕괴로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스토리다.



한국이 일본의 거품 붕괴 시기를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3월 1400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가 2021년 6월 3300까지 올랐다가 지난달 말 2300선으로 주저앉았다. 무려 1000포인트 이상 추락한 것이다. 거품 붕괴는 이제 부동산으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 서울 아파트 값이 지난주까지 6주째 하락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주택 매매 거래를 주도했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지역의 낙폭이 커졌고 강남구도 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6월 서울의 부동산 매매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나 줄면서 거래도 끊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다. 외화가 더 빠른 속도로 유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환율이 올라가고,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중앙은행은 더 긴축을 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우리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의존도가 44%일 정도로 세계 경기에 민감하다. 부채를 기반으로 형성된 세계의 거품 경제가 금리 상승으로 1차 붕괴한 데 이어 경기 침체로 또 무너지는 ‘더블딥(이중 침체)’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산 시장이 붕괴된 후 회복 속도도 더딜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각국 정부는 물론 기업·가계의 빚이 불어나 소비·투자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 대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80 평생 보지 못했던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도 2017년 감소세로 돌아서며 잠재성장률 하락을 압박하고 있다.

퍼펙트스톰을 막으려면 우선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부터 막아야 한다. 거래가 활발해지도록 양도세 감면을 확대하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며 은행의 대손충당금이 충분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제의 근간인 기업이 활력을 얻도록 규제·노동 개혁에도 과감히 나서야 한다. 사회 안전망은 강화하되 노조에 지나치게 기운 운동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에 나서는 것은 물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대체 근로를 허용해야 한다. 또 대기업 및 공공 부문 노조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며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방치하는 것은 이로 인해 허리가 휘게 될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이다. 자금이 신성장 동력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좀비 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도 서둘러야 한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기업이 상장회사의 14.8%에 이른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이 20년가량 지속된 것은 이런 구조 개혁을 철저히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쉬운 과제는 하나도 없다. 장관에게 맡겨둘 게 아니라 대통령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심정으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국민과 야당을 적극 설득해야 풀 수 있는 고차원의 함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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