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을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여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가입했다. 더 나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옵서버로 참여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확인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한국·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연합인 ‘칩4’ 동맹 참여도 저울질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외교적 행보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올라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패거리 정치, 대결 정치, 협박 외교라고 반발하고 있으나 한국에 대해서는 ‘지금 여기서’ 행동하기보다는 손자병법의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不動如山)” 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가 좀 더 밀어붙이면 중국판 경제안보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나토 회의 참석차 스페인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고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으며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탈출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 관련 주식을 폭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미 동맹이 한중 관계 발전과 배치되지 않고 IPEF 참여도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최대한 중국을 설득하고자 하는 정부의 상황 인식과도 궤를 달리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021년 말 기준으로 25%(홍콩을 포함할 경우 30%)에 달한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의존의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맞다. 더구나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을 겪었기 때문에 가치와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와 거리를 두는 것은 중요한 위험 회피 수단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가 전 세계를 무대로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과 중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실상 국가 봉쇄라는 극단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2021년 한중 양국 교역액은 역대 최고 수준인 3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의 대중 무역 흑자도 243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1% 하락할 때 우리 경제는 0.1~15%포인트까지 떨어진다는 한국은행의 조사 보고도 있다. 이것은 중국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중 경제가 깊이 연동돼 있고 중국의 시장 잠재력이 여전하며 ‘지리의 힘’으로 중국 철수가 현실적으로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시장이 줄어드는 만큼 유럽에서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너무 멀리 나갔다. 사실 한중의 수출입 구조도 과거 반제품에서 고부가가치의 완제품으로 변했다. 유럽도 고부가가치 부품 소재를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사실 미국조차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힘겨워하고 있다. 중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해야 한다는 미국 의회의 반대가 있으나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해제를 검토하기도 했다. 유럽이나 일본조차 다자 무대에서는 중국에 날을 세우고 있으나 양자 관계에서는 최대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고자 한다. 화답하듯이 중국은 이달 초 프랑스에 본사를 둔 에어버스 항공기 292대의 구매 계약을 맺기도 했다.
중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호기로운 발언은 ‘상호 존중’을 통해 대등한 한중 관계 위상을 정립하려는 새 정부의 분위기에 편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에 의존했을 때 공급망 위기가 어떻게 오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수출입 국가를 다변화해 경제적 충격을 줄이자는 뜻”이라고 해명할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200여 개의 부품 소재 등 공급망 리스크를 조용하게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외교적 메시지에는 상대가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고 말의 무게를 담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신념이 시장을 가르치려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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