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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다리 잃은 아픔 잊으려 한계 도전했죠"

■의족 끼고 철인 3종 완주한 이주영씨

9년 전 불의 사고로 왼발 다친후

올 3개 대회서 극한 고통과 맞서

배달용 자전거로 경기 나선 적도

내년엔 2배나 긴 '킹코스'에 출전

장애극복 원하는 이들에 도움줄 것

이주영 씨가 지난달 14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코스에서 의족을 낀 채 역주하고 있다. 이날 이 씨는 2시간 48분 07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사진 제공=이주영 씨




지난달 14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철인 3종 대회. 강풍에 수영이 취소될 만큼 최악의 기상 여건이었다. 500여 참가자 중 100여 명이 포기할 정도였다. 이런 악천후를 뚫고 한 참가자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왼발의 의족. 2시간 48분 07초의 하위권 성적임에도 주목을 받은 이유다. 없는 것은 또 있었다. 절단 장애인들이 달릴 때 쓰는 소위 선수용 의족 ‘치타 발’도, 보행 보조 기구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 처음으로 일반 의족 만으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것이다.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절단 장애인 이주영(41) 씨는 서울 구로동에서 소감을 묻는 말에 “목표를 달성한 내 자신이 정말 멋있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 씨가 철인 3종 경기에서 완주한 것은 올해 5월 대구와 6월 충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7월에는 석촌호수 수영 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꼭대기인 123층까지 올라가는 ‘2022 롯데 Oe 레이스’에 참가해 269번째로 결승선을 끊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 했던 이 씨는 9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고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당한 비극이었다. 불행은 계속됐다. 수술만 마흔 번 넘게 했지만 보상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산재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료를 받고 난 뒤에는 엉터리 의족에 울어야 했다.

이주영 씨.


그래도 입에 풀칠을 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의족이 안 맞아 고통이 극심했지만 이를 악물고 생계비를 마련하러 다녔다. 운동은 꿈도 못 꿨다. “퇴원 직후 살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밤에는 피자집 창고에서 자고 배달을 했습니다. 연평도와 덕적도 등에서 산업 잠수 일을 하기도 했죠. 지금은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생계 외 다른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습니다.”

그가 철인 경기에 나선 것은 재활 목적도 있지만 아픈 과거를 잊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고통이 클수록 다른 고민과 아픔은 사라졌다.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이전까지 세 차례 출전했지만 모두 수영과 사이클만 하고 마라톤은 기권을 했다. 의족이 제대로 맞지 않아 다리에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상태에서 달리기는 무리였다. 지난해 8월 한 의료 기기 업체가 이 씨에게 맞는 의족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마라톤을 뛰는 꿈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다른 참가자들이 사이클을 마치고 마라톤을 뛰는 것을 보고 너무 서러워 엉엉 울기도 했다”며 “이제는 내 몸에 맞는 의족을 가지게 돼 원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주영 씨가 지난달 7일 서울 잠실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2 롯데 Oe 레이스'를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이주영 씨


그는 자신에 대해 언제나 ‘대견하다’고 평가한다. 다른 참가자에 비해 훨씬 안 좋은 환경에서 경기에 나서 이만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사이클만 해도 그렇다.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는 다른 참가자들은 대부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용 자전거를 사용한다. 이 씨는 올 5월 대구 철인 경기 때까지 배달할 때 쓰던 자전거를 사용했다.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그에게 다른 참가자들의 장비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3시간 14분대의 기록을 냈다. “경차를 끌고 와 스포츠카와 대결해 이룬 성과입니다.” 이 씨의 평가다. 6월 충주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후원 업체의 도움으로 상황이 다른 경주용 자전거를 사용했지만 그것도 20년이 훨씬 넘은 중고다. 새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그가 극구 거부했다고 한다. 부담 때문이었으리라.

이주영 씨가 지난달 7일 서울 잠실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2 롯데 Oe 레이스'를 마친 후 자신의 기록이 찍힌 무대 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 씨는 수영과 롯데월드타워 123층을 올라가는 이번 대회에서 1시간 30분 8초의 기록으로 269위를 차지했다. 사진 제공=이주영 씨


이미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한 그는 이제 다른 도전에 나선다. 내년 열리는 ‘킹코스’ 대회 참가가 그것이다. 이 대회는 수영 3.8㎞, 사이클 180㎞, 마라톤 42.195㎞로 진행돼 일반 철인 3종 경기보다 2배나 긴 코스를 뛰는 경기로 일명 ‘아이언맨 코스’로 불리기도 한다.

이 씨는 자신이 다른 장애인들의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장애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리를 잃은 사람이 원한다면 그들에게 재활과 운동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며 “스포츠 의류 모델 등 다른 분야로도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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