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눈이 붓고 충혈되면서 눈곱이 낄 때 '눈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한다. 감염에 의해 결막에 염증이 발생한 상태인 결막염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눈을 뜬 채 생활한다. 미세먼지, 황사와 같이 공기 중 떠다니는 오염물질이나 세균 등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다. 불볕 더위가 지나가고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면서 야외활동이 늘어난 시기인 만큼 눈병 발생 위험도 높아졌다. 더욱이 올해는 거리두기 해제로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나들이족이 많아지면서 눈 건강 관리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
결막(conjunctiva)은 눈에서 흰자 위의 표면과 눈꺼풀의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보호막이다. 점액과 눈물을 분비해 눈의 윤활 작용과 함께 미생물의 침입을 막아 안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외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정작 결막 자체는 손상에 취약하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이 일어나고 염증반응이 유발되면 충혈, 눈물, 눈곱, 이물감, 안구통, 눈부심, 시력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각막이 탈락하면서 통증으로 눈을 뜰 수 없거나 각막 혼탁으로 시력저하가 동반되기도 한다. 원인과 관계 없이 결막에 염증이 생긴 상태를 통틀어 결막염이라고 부른다.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결막염이 생긴 경우를 유행성 결막염으로 분류하는데, 전염력이 강해 비슷한 시기에 특정 지역 내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할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유행성 결막염은 원인 바이러스에 따라 유행성 각결막염, 급성 출혈성 결막염 등으로 나뉜다. 유행성 각결막염은 유행성 결막염 중에서도 가장 흔한 유형이다.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 중 하나인 아데노바이러스가 원인으로, 결막 뿐만 아니라 각막(검은 동자)에도 염증이 동반될 수 있어 각결막염이라고 불린다. 급성 출혈성 결막염은 장바이러스인 엔테로바이러스가 대표적인 원인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 1969년에 크게 유행한 이력이 있어 ‘아폴로 눈병’이란 별명을 얻었다.
유행성 결막염은 물놀이를 하는 여름철에 많이 발생해 가을철에는 경각심이 떨어지기 쉽다. 하지만 가을철 유행성 결막염 발생률은 결코 낮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에만 9554명이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각막결막염 진단을 받았다. 여름인 7~8월에 같은 질환으로 병의원을 찾은 환자 수 1만 1703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결막염과 엔테로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유행성 출혈성 결막염의 월별 환자 수도 비슷한 분포를 나타냈다. 가을철은 활동량이 많은 낮시간에는 여름철 만큼 기온이 오르는 데다 소풍, 단풍놀이, 운동회 등 야외활동이 늘나 보니 바이러스 등 감염원에 노출될 확률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야외 외출 이후 손을 씻지 않고 눈을 만질 경우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더욱 높아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는 손을 올바르게 씻는 것만으로도 유행성 결막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의 70%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행히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기간 동안 올바른 손씻기 문화는 예전보다 한결 자리를 잡았다. 손을 씻을 때는 비누를 사용해 흐르는 수돗물에서 30초 이상 꼼꼼하게 씻는 것이 좋다. 또한 공동 화장실을 쓴다면 고체형 비누보다 물비누가 위생적이다.
유행성 각결막염은 일반적으로 5~7일 잠복기를 갖는다. 대개 한쪽 눈에 증상이 먼저 나타나고 며칠 뒤 반대쪽 눈에 증상이 나타난다. 두 번째 눈의 증상은 처음 발병한 눈보다는 경미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 가래, 기침 등이 생기는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원인 바이러스가 점막을 침범해 발생하는 증상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가 없다 보니 치료는 증상 완화에 목적을 둔다. 대부분의 유행성 결막염 환자는 특별한 후유증 없이 회복되지만 발병 후 약 2주간 전염력을 가지므로 주위에 병을 옮기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세면대, 비누, 수건, 침구 등 바이러스 전파를 매개할 수 있는 물건을 따로 사용하고 수영장이나 목욕탕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바이러스 외에 가을철 결막염을 유발하는 또다른 원인은 각종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다. 알레르기 결막염은 봄이나 가을처럼 환절기에 기승을 부린다. 알레르기 결막염은 주로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 등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공기 중의 먼지·동물의 비듬·진드기 등을 통해 결막에 닿아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증상은 눈과 눈꺼풀의 가려움증, 결막 충혈, 눈의 화끈거림을 동반한 통증, 눈부심, 눈물 흘림 등이다. 가을에는 일교차가 크다 보니 안구건조증이 심해지며 더욱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드물게 가끔 콧속이나 목구멍의 염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노란 눈곱보다는 투명한 분비물이 동반되는 점이 유행성 결막염과 가장 큰 차이다. 이국 압구정성모안과 원장은 “알레르기성 결막염의 경우 감염력이 없지만 눈이 불편하다고 만지거나 비비면 각막에 상처가 생기고 2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시력 손상까지 일으킬 수 있어 조기에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