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美 낙태권 폐지 판결이 피임약 시장에 불러온 나비효과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미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낙태 찬반 논란…임신중단 약물도 도마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성분 복합제, 전 세계 70여 개국서 허용

현대약품 '미프지미소' 허가신청 자진 취하…국내 도입 시도 무산

해외에서 임신중단 용도로 판매 중인 라인파마의 ‘미프지미소정’. 사진 제공=라인파마




미국에서 판매 중인 사후피임약 '플랜B 원스텝'의 제품 포장 라벨과 복약설명서가 20여 년만에 바뀝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지시에 따라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는다'는 문구를 삭제된다고 하는데요. 플랜B는 자궁 내막을 얇게 만들어 수정란 착상을 어렵게 하는 황체호르몬 ‘레보노르게스트렐’ 1.5mg을 함유한 경구용 피임약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성관계 또는 피임 실패가 의심될 때 임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응급으로 복용하는 제품이죠.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복용하면 최대 89%, 24시간 안에 복용할 경우 95%의 피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피임약이라고 하면 사전피임약을 가리키는데요, 생리와 임신에 관여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함유한 알약을 매일 일정 시간에 복용해 배란을 억제하는 원리입니다. 그에 반해 사후피임약은 체내 황체호르몬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착상을 방해합니다. FDA는 "플랜B가 '낙태약(abortion pill)'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포장 라벨과 복약설명서를 바로 잡는다"고 밝혔는데요, 플랜B의 기존 복약설명서에서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차단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 낙태 반대 운동가들 사이에서 꽤 오랫 동안 논란거리였거든요. 피임이 아닌 낙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낙태 반대론자들의 논리인데요. 고농도의 레보노르게스트렐은 임신 이전 단계인 난소에서의 난자 방출(배란)을 막거나 지연시킬 뿐, 자궁 착상을 차단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게 FDA의 입장입니다. 이미 임신이 된 여성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플랜B를 복용하는 행위가 낙태가 아니라는 거죠.

FDA의 이번 결정은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낙태권과 연계되면서 더욱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낙태)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50년만에 뒤집는 판결을 내린 이후 낙태와 태아 생명권을 둘러싼 논란이격화되고 있죠. 대법원 판결 직후 미국 전역에서 플랜B 수요가 급증해 현지 약국체인점과 소매업체들이 배급제를 시행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FDA는 사후피임약과 별개로 임신중단 약물에도 일찌감치 허가를 내줬습니다. 임신 10주(70일)까지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2가지 성분이 결합된 복합제 '미페프렉스'를 처방받아 복용할 수 있죠. 임신차단과 자궁수축을 담당하는 호르몬 성분을 함께 복용해 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고도 임신을 중단하도록 해주는 원리인데요, 2000년에 임신중단 약물이 FDA 첫 허가를 받은 후 몇 개주를 제외한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허용되어 왔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일부 주에서 임신중단 약물 공급을 제한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죠. 미국 뿐 아니라 프랑스, 중국, 영국 등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임신중단 약물 처방을 합법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선 아직 임신중단 용도로 허가된 약물이 없는데요, 현대약품(004310)이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와 '미프지미소'의 국내 독점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최근 자진 취하하면서 도입이 무산됐습니다. 식약처 허가된 약물이 없으니 임신중단 약물을 거래하는 것도 당연히 불법이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 처벌 효력이 사라진지 2년이 되어가지만 임신중단 약물이 법적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건강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코너는 삶이 더 건강하고 즐거워지는 의약품 정보를 들려립니다. 새로운 성분의 신약부터 신약과 동등한 효능·효과 및 안전성을 입증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없이 많은 의약품이 등장합니다. 과자 하나를 살 때도 성분을 따지게 되는 요즘, 내가 먹는 약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