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역사속 오늘]중국의 ‘친구’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해 12월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 온라인 화상 정상회담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푸틴은 중국과의 우호를 과시하기 위해 시 주석에 대해 “친애하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올해 봄 모스크바 방문을 공식적으로 기대했다. 중국의 군사 지원을 구애한 것이다.

푸틴이 시진핑에 대해서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기 178년 전인 1844년 중국의 최고 지도자인 청의 도광제에게 “당신의 좋은 친구”라고 국서를 보낸 외국 수장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10대 대통령 존 타일러다. 당시는 제1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영국과 중국 사이에 난징조약이 체결된 직후로 미국은 영국과 같은 조건으로 교역의 문을 열고자 했다. 이에 타일러 대통령은 중국으로 파견한 초대 대표 케일럽 쿠싱을 통해 도광제에게 전달한 친서 2통의 마무리에 모두 자신을 “당신의 좋은 친구(Your good friend)”라고 썼다. 물론 쿠싱을 상대하던 청의 관리 기영은 타일러 대통령의 편지를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편지의 표현을 모두 중국의 풍요로움을 흠모하는 조공국 수장의 표문(表文)으로 교묘하게 수정했다. “당신의 좋은 친구”라는 말이 삭제됐음은 물론이다.



마치 조공국 왕이 보낸 표문처럼 각색된 타일러 대통령의 친서를 한문 형태로 받아본 도광제는 만족했고 이에 마카오의 왕샤촌에서 미국과의 첫 조약인 왕샤 조약이 1844년 체결됐다. 기영이 기초한 도광제의 조서(詔書)는 한문과 만주문으로 미국 측에 전달됐고 다시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조공국에 보내는 조서의 흔적 역시 사라졌다. 미국 대통령은 이 서신을 읽고 중국 황제가 친절한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베이징 조정이 자신들을 ‘오랑캐’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친애하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푸틴의 발언이 시진핑에게 어떻게 전달됐을지, 그리고 시진핑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