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제동을 건 스코틀랜드의 '성별 정정 절차 간소화 법'이 결국 법적 공방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지난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투표와 관련해 대법원의 판단을 구한 데 이어 올해는 트랜스젠더 이슈를 놓고 갈등하는 모양새다. 여성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이 법은 영국에서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17일(현지시간) BBC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의 '성 인식 법'을 두고 결국 영국 정부와 법정에서 다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 인식 법은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정정하는 데 필요한 성 인식 증명서(GRC) 발급 절차를 단순화하는 법으로 지난해 말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됐다. 또 '성별 위화감(자신의 생물학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상태)'에 대한 의학적 진단 필요성을 없애고, 성별 전환 최저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췄다.
스터전 자치정부 수반은 "영국이 명백한 실수를 하고 있다"며 "스코틀랜드 의회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스코틀랜드의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라며 "스코틀랜드는 (법정에서) 법안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스코틀랜드는 영국 정부의 동의 없이 분리 독립 투표를 실시하려 했지만 대법원에서 패한 바 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 간소화를 둘러싼 갈등은 성 인식 법안에 영국이 사상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전날 영국의 알리스터 잭 스코틀랜드 담당 장관은 "신중히 내린 결정"이라며 스코틀랜드법 35조에 따라 해당 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전역에 적용되는 평등법에 이 법안이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법이 오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1999년 출범한 이후 영국 정부가 스코틀랜드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성 인식 법은 발의 및 통과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에 휩싸였다.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을 비롯한 반대론자들은 자신을 여성이라 주장하는 남성들이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 없이도 화장실, 탈의실 등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며 여성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아일랜드·덴마크·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에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해당 법안이 여성의 권리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나아가 성 인식 법은 영국 정부와 하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길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은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16세에 일하고 세금을 내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며 성별 전환 연령 하향을 옹호한 반면, 총리실은 장관의 개인 의견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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