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 장비 강국’인 일본·네덜란드와의 정상회담에서 대중(對中) 수출 통제 조치 동참을 압박하며 동맹을 규합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의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아 ‘연합전선’이 쉽사리 구축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1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네덜란드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관련 논의를 벌였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비슷한 안건을 테이블에 올린 지 4일 만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한 후 동맹들의 동참을 촉구해왔는데 이제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정상들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도쿄일렉트론은 손꼽히는 첨단 반도체 장비 생산 업체로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미국은 일본·네덜란드의 수출 통제 동참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는 리셔 슈레이너마허 통상장관이 정상회담 직전인 15일 “미국이 2년간 압박했다고 해서 우리가 새 수출 통제에 서명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도 이날 도미타 고지 주미 일본대사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수출 통제는) 산업계의 협조가 필요한 복잡한 문제”라며 “기술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다”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ASML와 도쿄일렉트로닉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5%, 28%에 달하는 만큼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반응을 의식한 듯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파트너와 동맹국들을 억지로 수출 통제 행렬에 밀어넣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물밑 압박에 양국이 결국은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네덜란드 하이테크산업협회(FME)는 이날 유럽연합(EU)에 보낸 서한에서 “더 강력하고 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 네덜란드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EU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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