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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많고 꽃다운…우린 국가대표다





1년 중 가장 푸르른 계절에 가장 어울릴 만한 골퍼 둘을 만났다. 열여덟 살 유현조(사진 왼쪽)와 열일곱 서교림(오른쪽)이다. 스튜디오의 하얀 벽 앞에 선 둘은 서로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까르르 웃으며 추억을 쌓았다. 얼굴만 보면 평범한 여고생인데 이 둘의 옷에는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지난해 말 선발된 국가대표다. 어릴 때부터 화려한 성적을 몰고 다녀 이미 기업(삼천리)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여자골프 최강국의 국가대표 선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들과 1년 중 200일쯤을 함께하는 소속팀 코치 권기택 프로도 ‘토크’에 참여했다.

국가대표의 삶은 어떤가.>>>

유(유현조): “국내에서 여자 아마추어 골퍼로 톱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며 훈련하는 게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다.”

서(서교림): “늘 꿈꿔온 타이틀이 국가대표다. 5명의 언니, 친구들과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최대한 즐겁게 훈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좋은 점.>>>

유: “합숙은 1년에 100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치는 또래들과 집중적으로 경쟁하고 연습하니 장단점이 비교가 돼서 배우는 게 많다. 우정힐스나 남서울 등의 골프장에서 무료 라운드할 수 있는 것도 크다.”

서: “국가대표가 되기 전엔 국제 대회를 나갈 기회가 없었는데 태극마크를 다니까 국제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경험 면에서 이득이 많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은 어땠나.>>>

권(권기택): “대회별로 선발 포인트가 있고 종합 순위로 대표가 가려진다. 작년 9월 KB금융그룹배를 끝으로 결정이 됐다. (서)교림이가 8월 카카오VX 대회에서 우승하고 (유)현조는 KB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둘이 같이 뽑히게 됐다. 시즌 초반에 안 풀릴 때도 있었지만 ‘으쌰으쌰’하면서 서로 밀어줬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했다.”

서: “코치님은 나사가 풀렸다 싶으면 잘 조여 주신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정신이 탁 든다.”

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괜스레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막혔던 생각이 좀 뚫린다.”

권: “선수뿐 아니라 학부모님들과 소통도 정말 중요하다. 제 경우는 여자 선수들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트레이너에게 관계 설정과 소통법 등에 대해서 조언을 많이 구했다.”

국제 대회 경험도 궁금하다.>>>

유: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WAAP)이랑 2월 필리핀에서 치른 퀸시리키트컵에 나갔다.” (WAAP에서 서교림은 공동 10위, 유현조는 공동 22위에 올랐고 퀸시리키트컵에선 유현조가 공동 3위, 서교림은 공동 20위를 했다.)

퀸시리키트컵 단체전 우승이 특히 뜻깊었겠다.>>>

유: “단체전은 처음이었는데 대표팀의 또 다른 멤버인 (김)민솔이랑 셋이서 ‘팀을 위해서 치자’고 계속 서로 얘기해주면서 똘똘 뭉쳤다. 한국의 단체전 우승이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고 들어서 더 잘하고 싶었다.”

서: “시상식 끝나고 장기자랑 나갔던 것도 추억이다. 팀별로 나가서 뭔가 보여주는 게 대회 전통이라고 하던데 우린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에 맞춰 노래하고 춤췄다.”

까탈레나? 10년 쯤 지난 노래 아닌가.>>>

유: “뉴진스의 ‘하입보이’하려고 했는데 제가 몸치여서 불가능했다.”

서: “뭘 하든 재밌으면 높은 점수 준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까탈레나가 ‘딱’이었고 결국 우리가 우승했다. 한국팀이 우승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권: “와, 2관왕인 거네.”



앞으로 있을 국제 대회 성적도 기대된다.>>>

권: “9월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있고 10월엔 두바이에서 세계선수권이 있다. 대한골프협회 랭킹 시스템을 통해 선발되는 아시안게임 엔트리는 6월쯤 결정된다. 랭킹 시스템이 적용되는 대회에서 부지런히 성적을 내야 한다.”

유: “아시안게임 선발을 위해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할 거다. 물론 뽑히고 싶은데 한편으론 매달리고 싶진 않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자격을 충족해있더라’ 이런 흐름이 가장 좋다고 본다. 국가대표 될 때도 그랬다. 자꾸만 바라다보면 그것만 하고 싶어서 원하는 경기력이 잘 안 나올 때가 많았다. ‘차근차근 하다 보면 바라는 곳에 가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서: “아시안게임은 4년에 한 번 오는 귀한 기회이지 않나. 귀한 만큼 꼭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세계선수권도 같은 마음이다. 아직은 크게 와 닿진 않지만 1등하고 싶을 것 같다.”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유: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의 권유로 취미로 시작했다. 근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이렇게 선수의 길에 들어서 있더라. 정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다.”

서: “아빠가 생일 선물로 골프채를 주셨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그때부터 계속 골프를 하고 있다.”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훈련은 어느 정도로 했나. 국가대표를 꿈꾸는 주니어 골퍼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유: “엄청 추운 한겨울에도 야외에서 10~11㎞씩 뛰는 게 보통이었다. 아침 6시 30분부터 훈련인데 시작은 늘 러닝이었다.”

서: “대회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서도 틈틈이 트랙 가서 뛰었다.”



권: “아무래도 기술에 앞서 체력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많이 들고 많이 뛰고 점프 훈련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비중은 러닝이 가장 컸다. 연습 라운드를 해도 끝나면 또 달려야 했다.”

유현조


서교림


기업이 운영하는 시설(삼천리 골프아카데미)에서 배우면 뭐가 좋은가.>>>

유: “저는 테스트를 보고 들어온 케이스다. 코칭, 트레이닝, 멘탈 관리를 한 건물 안에서 다 받을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편하다. 겨울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두 달 정도 강도 높은 훈련도 받을 수 있었다. 오직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환경과 지원이 뒷받침된다.”

서: “저는 삼천리 선발전 1기로 들어왔다. 연습 라운드 지원이 좋아서 실전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대회에 앞서 코치님과 맞춤 준비를 할 수 있고 대회 현장에 동행해 선수가 원하는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심리학 분야 박사가 상주한다고 들었다. 어떤 도움을 받나.>>>

유: “두 분이서 개인 면담과 단체 면담으로 나눠 진행해주신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골프를 할지 태도와 목표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저는 ‘성장하는 마음으로 치겠다’고 했고 그렇게 해나가는 중이다. 국가대표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시간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나간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골프를 할 거다.”

서: “경기 때 긴장되는 상황에서 심호흡을 한 번 더 한다거나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여유를 찾으라는 등의 조언이 효과가 있다.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전문가의 입을 통한 얘기는 확실히 다르다.”

골프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유: “세계 랭킹 10등 안에 드는 것. 이왕 골프 시작했으니 그 정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가서 커리어 그랜드슬램 하고 싶다.”

롤모델은 누군가.>>>

서: “넬리 코다. 저도 코다 선수처럼 키가 큰 편(173㎝)이어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예쁘고 골프도 잘 쳐서 닮고 싶다. 그리고 투어 생활을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신 홍란 선생님(삼천리 아카데미 멘토)도 롤모델이다.”

유: “저도 홍란 선생님. 그리고 고진영 선수. 근성이 남달라 보이고 끈기가 대단한 것 같다. 안 돼도 되게 하는 그런 이미지가 있다. 보고 배울 점이 굉장히 많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서: “어릴 적 코치님의 롤모델이 누구였는지도 궁금하다.”

권: “나? 저는 프레드 커플스. 부드러움이 좋았다. 스윙뿐 아니라 경기를 풀어가는 전략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코치님이 평소에 가장 강조하는 건 뭔가.>>>

유: “체력을 1번으로 강조하시는데 선수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거라고 짐작된다. 스윙에 있어서는 ‘자기 것이 있으면 된다’는 얘길 많이 해주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석 스윙에 엄청 신경 쓰는데 개성 있는 스윙으로도 잘 치면 되는 거니까.”

서: “자기 것만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 흔들릴 일이 없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유: “코치님 처음 봤을 땐 뭔가 무서운 이미지였다. 사투리 억양이 강하고 목소리도 크고. 나중에 부산 남자라서 그런 것도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셨다. 분명한 건 알면 알수록 따뜻한 분이란 거. ‘겉바속촉' 코치님이다.”

서: “작년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 대회에 추천 선수로 나갔었다. 코치님이 날도 더운데 3라운드 내내 캐디로 백을 메주셨다. 발톱이 빠질 만큼 고생해주신 덕분에 아마추어 부문 1위(전체 공동 17위)를 할 수 있었다.”

“본인에 대한 믿음 있는 아이가 결국 성공, 부모님 역할도 커요”




권기택(41·가운데) 코치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골프 단체전 은메달 멤버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골프를 하다가 아시안게임에 발탁돼 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일본 내 최고 골프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도호쿠 후쿠시대 출신으로 아시아 최초의 마스터스 챔피언 마쓰야마 히데키가 동문이다.

아마추어로 송암배 우승과 한국오픈 3위 등의 성적을 낸 권 코치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활약했다. 20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2021년 말부터는 한국의 주니어 골퍼들을 가르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권 코치는 아시안게임 경험을 돌아보면서 “군대 문제도 있고 고향인 부산에서 하는 경기여서 부담이 너무 컸다. 아무리 큰 경기라도 그저 여러 경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준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었다”며 “과정이 중요하단 말은 흔하긴 해도 정말 맞는 말이다. 제자들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시안게임 나간다’는 접근보다는 눈앞에 주어진 것들을 꾸준히 해나간다는 자세로 임하면 좋겠다”고 했다.

매일 주니어 선수들을 ‘매의 눈’으로 대하는 전문 코치는 앞으로 누가 성공한 투어 프로가 될지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권 코치는 “소위 ‘되는’ 선수들의 특징을 보면 결국 멘탈리티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본인에 대한 믿음과 확신 같은 것들이 보인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줄 안다”고 설명했다. “늘 잘 되던 운동도 떨어질 때가 반드시 있는 법인데 동기부여가 뚜렷한 선수들은 그럴 때 금방 컴백이 됩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성이 좋은 선수가 1~2년 두고 보면 확실히 좋아지는 것도 있고요. 스윙이나 기술적 부분이야 다들 좋은 걸 많이 배우니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권 코치가 생각하는 ‘라떼(나 때)’와 ‘요즘 애들’의 골프 환경은 어떨까. 그는 “각계 지원, 연습 환경, 코칭하는 사람들의 능력 등에서 엄청나게 좋아진 건 분명하다”며 “예전엔 인터넷이 뜨겁기 전이니 프로님들한테 배우는 게 전부였다. 요즘엔 외국에서 인기 있다고 하는 최신 레슨이라든지 운동 방법 등을 선수나 코치, 트레이너가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으니 그런 면에서 기량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라운드 지원 같은 건 저희 때가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대회 예선을 통과하면 선수증이 나왔고 그것만 들고 가면 골프장에서 회원 대우를 해줬다. 어프로치 샷 연습장이라든지 아카데미 시스템은 많이 부족했지만 라운드를 통한 연습을 하기엔 좋았다”고 했다.

요즘 주니어 골퍼를 둔 부모는 자식의 꿈을 위해 1년에 얼마를 투자할까. 권 코치에 따르면 많을 경우 초등생 꿈나무에게도 1년에 1억 원 정도를 들인다. “우리나라 부모님들 사이에는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아요. 일단 골프장들이 대부분 훌륭한 연습 시설을 갖추고 있고 주니어 선수에 호의적이니까요. 골프장 일을 조금만 도와주면 9홀 라운드와 연습 기회를 제공하는 곳도 많아요. 라운드 비용만 줄여도 아주 큰 거죠.”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데는 골프 맘, 골프 대디의 성향도 중요할 것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얘기도 많지만 권 코치는 “일정 수준의 관리는 반드시 요구된다. 높은 수준의 자기 관리가 필요한 위치인 동시에 아직 어리기 때문에 골프에만 신경 쓸 수 있게 어머니, 아버지가 잘 컨트롤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운동과 연습량에서부터 기상 시각, 식습관까지 습관을 잘 들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주니어 때 좋은 습관을 들여놓으면 프로 선수가 돼서도 변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요.” 권 코치는 “그런 점에서 부모의 역할이 크다. 적극적인 엄마, 아빠 아래서 자란 친구들이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고 했다.

“골프를 매개로 삶의 방식, 삶을 대하는 자세를 함께 고민하고 배우면서 성장해나간다는 점에 주니어 코치의 매력이 있다”는 권 코치는 “무엇보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 한다.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장점일 수도 있기에 의견을 나누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성을 발견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코치를 넘어 교육자라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을 것이다. 골프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설계하는 데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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