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협상이 교착을 거듭하면서 미 단기국채 수익률이 초우량기업 회사채 수익률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커지며 ‘최고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다. 협상 결렬 소식에 증시도 1% 안팎 빠지는 등 시장이 협상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 시간) 기준 8월 8일, 11월 2일 만기가 돌아오는 미 국채 수익률이 각각 4.997%과 5.127%로 비슷한 시기에 만기 도래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존슨앤존슨 회사채 수익률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8월 6일이 만기인 MS 회사채 수익률은 4.64%, 11월 15일인 존슨앤드존슨 회사채 수익률은 3.73%다. 채권은 수익률과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으면 가격이 비싸진다는 의미다.
두 기업이 신용등급 ‘AAA’라는 점을 고려해도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된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미 국채는 미상환 위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회사채보다 낮은 수익률에 거래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WSJ는 “미 국채는 가장 안전한 채권으로 간주돼 월가에서는 미 국채 수익률을 다른 투자의 최소 수익률 기준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수익률이 역전됐다는 것은 미 단기국채의 매력이 그만큼 반감됐다는 의미다.
미 국채의 선호도가 떨어졌다는 신호는 더 있다. 투자 부적격 채권을 의미하는 ‘정크본드’는 이전에 미 국채 수익률보다 8%포인트 높은 수익률에 거래됐지만 올 들어서는 이 차이가 5%포인트 미만으로 좁혀졌다. 다음 달 6일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6% 이상으로 치솟았다.
미국의 디폴트 시점으로 여겨지는 6월 1일이 다가옴에도 부채한도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국가부채가 법정 한도에 도달하면 의회에서 한도를 올려줘야 디폴트를 피하고 국채 상환 의무 등을 이행할 수 있다. 이에 백악관과 의회 간 협상이 수차례 진행됐지만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간 3차 협상이 결렬됐고 이날 열린 실무진 협상도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양측이 연방정부 지출 억제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디폴트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날 실무진 협상 결렬 소식으로 다우존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지수는 각각 0.69%, 1.12%, 1.26% 하락했다. 금융정보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미국의 고신용등급 기업들이 이달 들어 발행한 회사채는 1120억 달러어치로 지난달 발행액의 세 배를 웃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채협상 교착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에 대비해 기업들이 미리 자금 조달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