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마지막 실전 테스트인 9월 모의평가 계획이 나왔다. ‘공정한 수능’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공개된 후 처음 실시되는 모평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관심은 이번 모평에서 공교육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킬러 문항이 배제될지, 교과과정에서만 문제를 출제하면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실시된 2023학년도 수능은 2022학년 수능에 이어 또 한번 ‘역대급 어려운 수능(불수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답률이 5~10% 정도인 킬러 문항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국어 영역에서 출제된 ‘클라이버의 기초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지문이 대표적이다. 클라이버 기초대사량 연구는 지문에서 상용로그·기울기·편차 등 과학 용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사전 지식 없이는 사실상 정답을 맞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이 이달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수능 개편을 지시하면서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과목 융합형”이라며 국어 영역의 비문학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킬러 문항은 체계적인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풀기 어렵다. 이에 윤 대통령은 사교육 촉매제로 킬러 문항을 콕 집으며 공정한 수능을 위해 공교육 과정에서만 수능 문제를 출제하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지시한 공정한 수능에 대한 지적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매년 수능 당일 오전 개최하는 수능 출제 방향 브리핑에서 교과과정과 수능의 연계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17일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 당시에도 출제위원장인 박윤봉 충남대 교수는 “학교에서 얼마나 충실히 학습했는지 평가하기 위해 고교 교육과정 내용과 수준에 맞춰 출제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난해 수능에서도 난이도 조절을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올 3월 2024학년도 수능 시행 기본 계획을 발표한 평가원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기 위해 킬러 문항은 출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실제 이 같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봤다. 윤 대통령이 3월 공정한 수능을 강조한 후 첫 시험대였던 6월 모평에서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교육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문제 출제 기관인 평가원에 대한 감사 착수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교육 당국과 평가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평가원이 주최하는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이자 출제 경향을 예측할 수 있는 9월 모평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EBS 연계율 50% 등 큰 틀에서는 6월 모평과 차이가 없다. 다만 교육 당국은 공교육 과정을 벗어나는 문제가 포함되지 않도록 평가원과 조율 작업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문제를 꼬아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만큼 9월 모평은 평가원과 조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학원가에서 비문학 국어와 과목 융합형 문제 같은 고난도 문제가 이번에는 출제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수능의 변별력과 난이도를 단기간에 조정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의 지시 사항에는 킬러 문항 배제뿐 아니라 변별력 확보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입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에는 공정한 수능과 변별력 확보라는 두 가지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현실적으로 이 두가지를 모두 이뤄내는 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능 5개월을 앞두고 이 같은 발언이 나오면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아직 6월 모평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며 “올해 수능 이후 이 같은 발언이 있었으면 몰라도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9월 모평 평가가 어떻게 도출되더라도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킬러 문항 배제만으로 사교육을 잡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입시 전문가는 “결국 9월 모평은 결과적으로 6월 모평에 비해 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변별력까지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있는데 결국 킬러 문항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준킬러 문항이 많이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이럴 경우 기존에는 킬러 문항을 못 푸는 문제라 포기했던 수험생들이 너도나도 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교육 경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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