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이른바 ‘연필 사건’의 학부모 상담 이후 당일 자신의 어미니와 나눈 메시지가 공개됐다.
5일 JTBC는 A씨가 생전 작성했던 업무수첩 일부를 유가족 동의를 받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A씨는 학기 초부터 특정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적거나 학급에서 발생한 일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수첩에는 “아이에게서 문제 행동이 보이면 바로 협력 교사에 요청해야 한다”, “반말이나 발차기 등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강하게 훈육해야 한다” 등 어떻게 해야 잘 지도할 수 있는지 고민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 ‘학급 붕괴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써놓기도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학부모와 면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A씨가 힘들어 한 정황도 담겼다. 지난 6월 A씨는 학부모 상담 후 “왜 자꾸 우리 아이한테만 그러냐”는 학부모의 발언을 적어뒀다. 이에 A씨는 “어머니, 그럼 그냥 놔둘까요? 뭘 하든 그냥 놔두면 되나요?”라며 하소연하는 듯한 메모를 남겼다.
유가족은 ‘연필 사건’의 학부모 상담이 있었던 날 딸 A씨와 나눴던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연필 사건’은 지난달 12일 A씨의 학급 수업 중에 발생했다. 당시 B학생이 C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C학생이 연필을 빼앗으려다 자기 이마를 그어 상처가 생긴 사건으로 C학생의 학부모가 여러 차례 A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A씨는 이튿날인 13일 학교 측에 ‘연필 사건’을 보고하며 “연필 사건이 잘 해결됐다고 안도했지만, 연필 사건 관련 학부모가 개인번호로 여러번 전화해서 놀랐고 소름 끼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A씨는 “엄마 ㅠㅠ”라며 어머니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A씨의 어머니가 “왜?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길래”라고 묻자, A씨는 3시간 뒤 “너무 힘들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A씨 유가족은 “(대화 내용을 보고) 정말 힘들었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아팠다. 미어졌다”며 “얼마나 힘들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연필 사건’ 발생 약 일주일 후인 지난달 18일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이른바 ‘연필 사건’과 관련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고인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교육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A씨 담당 학급에서 ‘연필 사건’이 발생한 게 사실이며 A씨는 학생 생활지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A씨가 ‘연필 사건’ 후 여러차례 주변에 불안감을 호소했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동료 교사 증언과 기록에 따르면 A씨는 연필 사건에 연관된 학생 2명 외에도 또 다른 학생 2명의 생활태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생이 가위질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문제행동으로 교사가 불안해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교사가 학생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왜 그랬을까요”라고 했다는 동료 교사의 진술도 확보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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