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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최대 1조 달러 ‘제2 마셜플랜’…우크라 진출 성공 땐 유럽 교두보 마련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기회와 리스크

서방, 러시아·중국 대항할 자유민주주의 성공 모델 구상

우크라 단순 복구 넘어 서구화·현대화에 천문학적 자금

한국도 해외 기지 확보·가치동맹 차원서 적극 참여하되

재건 비용 조달 등 걸림돌…국제 협력으로 위험 줄여야

윤석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올 7월 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정상회담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통령실




KOTRA에 따르면 올 7월 20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힐튼호텔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관련 콘퍼런스가 열렸다. 주최 측인 체자리 카지미에르차크 폴란드 경제인연합회(ZPP)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끝나면 서방 자본의 투자가 본격 시작되면서 폴란드 기업들이 기회를 잡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지금 바로 시장조사, 투자 계획 수립, 파트너 발굴 등 사업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국책은행인 폴란드경제은행(BGK)의 보그단 자바데비츠 국제분석팀 매니저는 “우크라이나의 재정 위기, 막대한 경제적 손실, 생산 인구 감소 등이 문제점”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해 정치·경제·지리적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유리한 폴란드에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진출은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하는 미지의 영역인 셈이다.



우리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이 ‘제2의 중동 특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 7월 윤석열 대통령의 폴란드 국빈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에 참가한 기업 8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방문의 최대 성과로 ‘국내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 기회 확대’를 꼽았을 정도다. 당시 윤 대통령은 폴란드 순방을 마친 뒤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안보·인도·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에 3억 달러를 무상 지원하고 2025년부터 20억 달러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유상 원조할 방침이다. 지난달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관 합동의 ‘재건 협력 대표단’을 이끌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사업 기회를 타진했다.


미·유럽, 전쟁 중에도 재건 논의 본격화


서방국들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앞으로 10년 동안 최대 1조 달러로 추산되는 재건 비용 때문이다. 올 3월 세계은행과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전쟁 발발 1년간 인프라 직접 피해액은 1350억 달러에 이르고 향후 10년간 재건 및 복구 비용은 41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전쟁이 더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총 복구 비용이 주거 지역 복구 및 현대화(2500억 달러), 물류망 개선(1200억 달러), 에너지 자립 및 그린딜(1300억 달러) 등 최소 7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아직 전쟁 중이지만 재건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서방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경제회복 특별대표에 페니 프리츠커 전 상무장관을 임명했다. 영국은 올해 6월 런던에서 재건 회의를 개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월 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복구 사업에 일본 기업이 참여하기로 합의하고 총 76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독일은 내년에 우크라이나 복원 회의를 베를린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미국·유럽 등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단순 복구하는 차원을 넘어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할 전초기지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성공 모델로 만들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이 ‘제2의 마셜 플랜’에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력 확대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럽에 무상 원조 117억 달러, 차관 11억 4000만 달러 등 130억 달러(2021년 가치로 1280억 달러) 규모의 경제 원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군비 지출 감소에도 세계 유일의 패권국 지위를 인정받고 종전 이후에도 재건 특수를 누렸다.

이양구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구소련권 국가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전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타파하려는 시도”라며 “제2의 마셜 플랜이 성공해 우크라이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유럽의 안정과 평화 유지를 위한 또 다른 억지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전후 재건사업을 논의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플랫폼으로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RC)를 가동하고 있다. EU와 G7·한국 등은 올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차 회의에 참석해 민간 주도 복구,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전쟁 보험 프레임워크 도입 등 재건 방향과 과제를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는 EU 500억 유로, 미국 13억 달러 등 약 600억 달러의 추가 지원안이 발표됐다. 또 42개국에서 500개 글로벌 기업들이 참가해 5조 200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협약’에 가입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강한 유럽 국가’ ‘매력적인 외국인 투자처’ 등의 비전을 내세워 재건사업을 서구화와 현대화, 성장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힌 상태다. 특히 녹색 및 디지털 전환의 기조 아래 EU 통합과 EU·G7 시장 진출,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인적 자본 강화, 인프라 현대화 등을 세부 과제로 제시했다.


종전 불확실·경제 와해 등이 리스크


하지만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불확실성과 투자 리스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천문학적인 재건 비용을 ‘누가, 언제,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올해 상반기 우크라이나 세수는 162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출은 482억 달러로 3배에 이른다. 부족한 금액은 서방 지원에 의존했다. 국제기구와 서방국가의 지원, 전쟁 채권 발행, 러시아 자산 압류 등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재원 방안 마련도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출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이미 156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상황에서 다른 개발도상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추가 지원은 부담스럽다. 세계은행(WB)은 자금 지원 능력이 고갈된 상태다. 전쟁 초기부터 올해 1월까지 서방 주요국이 약속한 642억 유로 가운데 실제 지원액은 310억 유로에 그쳤다. 추가 지원은 야당의 반대 등으로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000억 달러에 이르는 러시아 국외 재산 압류는 국제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오랜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경제 자체가 와해돼 있는 가운데 철강·화학 등 핵심 공업 지대인 돈바스 상실, 젊은 노동력의 급감, 고질적인 내부 부패 등 숱한 난제들이 놓여 있다. 특히 젤렌스키의 재집권 실패, 우크라이나 내전이나 분할 위험 등도 배제할 수 없어 재건사업을 수행하고도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다른 나라 기업의 빠른 진출을 독려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에 먼저 들어오는 기업에 보상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국, 520억 달러 사업 참여 기회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업 규모가 천문학적인 데다 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간 가치동맹 강화, 농업·광물 대국인 우크라이나의 잠재력 활용 등 여러 측면을 감안해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참여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규모는 총 520억 달러 정도다. 우크라이나가 한국 정부에 제안한 약 200억 달러 규모의 5000개 재건사업과 소형모듈원전(SMR)·정보기술(IT) 등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는 320억 달러를 합친 것이다. 양국 정부는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카호우카 댐 재건 지원 △철도 노선 고속화 등 6대 선도 프로젝트 분야에서 중점 협력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 전 대사는 “앞으로 베트남과 같은 생산기지 마련과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사업 참여가 필요하지만 한반도 유사시 안보 보장 측면에서도 미국 등 우방국들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 면적의 20배로 국가가 소유한 3200만 헥타르(㏊)의 농지를 사유화하고 3600개의 국유기업을 민영화하면 전후 복구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진행은 전쟁의 향배나 서방국들의 동향, 외부 자금의 투입 가능성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학기 산업연구원 글로벌산업실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의 경제 현실과 평화 협상 여건 등을 감안하면 선점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사업 기회를 얻더라도 대금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기업-국제사회 다리 역할 해야


사업의 대부분이 전쟁과 재건 비용을 부담한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국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민간 기업들의 리스크도 줄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는 전후 복구 사업, 해외 인프라 건설 등에서 전문성과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며 “정부가 우크라이나는 물론 다자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와 우리 기업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부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 전문연구원은 “민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금융 외교 강화 등 다각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우크라이나의 디지털·그린 경제 전환에 맞춰 한국만의 독자적인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정서적 유대감이나 한국 특유의 사업 추진력 등을 활용하면 의외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은 강대국의 외침과 전후 폐허를 딛고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단기간에 이룬 한국을 국가 발전의 롤모델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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